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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훈 Apr 17. 2024

쥐를 본 적 있나요?

추락한 곳의 원주민

요즘 쥐를 자주 본다. 혹여나 달려들면 금방 도망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두리번거리다 이내 사라진다. 짧은 몇 초가 자꾸 맴돈다. 쥐의 생김새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 본 쥐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서 봤더라.


무거운 유리문을 온몸으로 밀어낸다. 매캐하고 찬 공기가 훅 들어온다. 내부 온도가 살짝 낮아졌다가 이내 돌아온다.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 맨바닥에 큰절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보다 낮은 머리맡에 시커먼 손이 슬며시 벌려져 있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은빛이 반짝인다. 백화점과 허름한 상가를 잇는 육교를 내려온다. 밑에서 봐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냉면을 먹고 나와 담배를 태운다. 맨홀뚜껑 위에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다. 꽁초는 꽁초를 부른다. 흰색 필터에 붉은 틴트가 옅게 번져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시커먼 덩어리가 튀어나온다. 쥐다. 까만 털 표면이 옅게 은빛으로 반짝인다. 손바닥보다 작은 저 녀석이 조금 무섭다. 혹여나 달려들면 금방 도망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녀석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두리번거리다 이내 튀어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도시와 도시 사이. 쓰레기 처리장과 크고 작은 공장들 사이에 우리 창고가 있다. 8차선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자동차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그들이 스칠 때마다 몸 안에서 소리가 울린다. 창고로 들어가는 샛길 옆에 쓰레기 처리장 입구가 있다. 거대한 크레인이 쓰레기 더미를 뒤적인다. 인형 머리를 잡듯이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린다. 입구 옆 철장 안에 검고 커다란 개가 서있다. 검붉은 배설물이 굴러다닌다. 그중 하나가 벌떡 일어난다. 쥐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몸을 울리던 굉음이 멎는다. 월! 하고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인다. 없다. 녀석이 있던 자리 주변을 살핀다. 검붉은 배설물만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땅거미가 진다. 아직 가로등 켜질 시간은 아니다. 이 주변은 여름에도 유독 해가 금방 진다. 


쥐와의 조우.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내 활동 반경과 쥐의 활동 반경이 겹치는 일이니까. 사실 쥐들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그들의 활동 반경은 우리보다 넓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쥐가 있고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에서도 쥐는 살 수 있으니까. 심지어 사람이 살기 훨씬 전부터 쥐는 살고 있었다. 쥐들도 사람을 조우하는 일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삶이 소설이고 내가 그 작가라면 주인공의 삶이 시궁창을 향하고 있을 때 쥐를 마주치게 할 것 같다. '너 지금 위기야, 그들을 마주쳐서는 안 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생각해 보니 쥐의 삶에서도 나는 위기 아닌가. 우리의 조우는 서로에게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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