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맑음 Nov 30. 2024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일하러 가는 길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집과 아주 가깝다. 도보로 이십 오분, 버스나 지하철로 이십 분, 자가운전으로 15분. 아침에 출근할때 소요되는 시간이다. 


일부러 직장 가까이 집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출퇴근을 고려하여 직장과 같은 지역에서 집을 보러다니기는 했지만, 지금 사는 집을 처음 보았을 때는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와서 계약을 망설이기까지 했다. 저녁에 마트에서 장보고 나오다가 야근하고 퇴근하는 동료를 만나거나, 집 앞 편의점에 뭔가를 사러 나왔다가 편의점 옆 투다리에서 술을 마시는 동료와 마주칠 확률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펼쳐졌다. 여름밤 마트에서 직장 동료를 만난 적도 있고, 야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투다리 앞에서 담배피는 상사를 만나기도 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다가 이른 잠자리에 들었을때, 집 근처에서 술마시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가는 길이 복잡한 상가나 대로변이 아닌, 호젓한 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되었다.  


주상복합인 우리 집은 공동현관을 나서면 바로 공원이 맞닿아 있다. 공원 초입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을 따라 약 십오분 가량을 걸으면  공원 끝부분이 나온다. 공원을 나와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 상가 건물이 세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 상가 건물을 따라 오분 가량 걸은 후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면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외부 출장이 있거나, 무거운 짐이 있거나 혹은 늦잠을 자서 출근시간이 빠듯한 경우엔 자가 운전으로 출근했다. 내가 걸어서 출근하는 길과 나란히 있는 공원 밖의 대로로를 따라 운전하면 사무실이였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지하철과 버스는 집에서 사무실까지 직선거리를 디긋자 형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걸어서 출근하는 것에 비하여 크게 시간 절약이 되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 이른 새벽이지만 승용차를 몰고 싶지 않은 날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이지만, 우리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역방향으로 십 분을 걸어가야 했다. 버스는 집 앞에서 탈 수 있는 편리함은 있지만, 배차간격이 삼십분 가까이 되기에 여러번 앱을 열어서 버스 도착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나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기꺼이 걸어서 출근했다. 추위가 절정에 달하는 십이월과 일월 몇주를 제외하면 되도록 걸어가려고 노력했다. 걸어서 출근하는 그 이십오분은 오롯이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걷는 동안 머리를 비워두기도 하고, 업무나 개인 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며칠째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는 묵은 감정을 씼어내기도 했고, 나를 둘러싼 주변을 돌아보며 글감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동안 자가운전으로 출퇴근을 했었다. 한파가 기습적으로 몰려왔다고도 했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설때의 어두컴컴함이 혼자 공원을 걸어가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도 했다. 차를 써야하는 외부출장 일정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렇게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는 날이 몇주 계속되자 내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으면 왠지 불안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걸어서 사무실에 오는 아침시간이 오롯이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집중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생략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시간이라는 커다란 파도에 떠밀려 이리 저리 표류하는 삶을 사는 것만 같았다. 


어제는 출장이 있어서 사무실에 차를 가져왔지만, 차를 건물 주차장에 남겨둔 채 걸어서 퇴근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사이 공원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던 커다란 연못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가 생겼다. 한겨울에는 일곱시 반이나 되어야 뜨던 해가 오늘은 일곱시가 넘자마자 사방이 밝아왔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 내내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간간히 이른새벽 부지런하게 공원을 도는 사람도 보였다.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하는 내내 오늘 꽉찬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거센 파도에 떠밀리듯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채 허둥되며 하루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생각도 정리했으니 이제 냐게 주어진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을 내 스스로 재단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도 화이팅!    


(2023년 3월에 썼던, 역시 글을 다 쓰고는 '작가의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글이다. 지금 읽어보니 '나 매 순간마다 의미를 두고,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