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그리고 내일의 내가 더 나을 테니까
쾅!
다부진 체격의 남자 회원이 방금 또 떨어졌다. 몇 번째 시도인지 모르겠다. 큰 소리를 내며 매트에 떨어졌지만, 그 얼굴에는 아픔보다 아쉬움이 먼저 보인다.
“아! 거의 다 됐는데!”
그 모습을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중년 남자 회원은 ‘합손(홀드 하나를 두 손을 모아 잡는 것)을 하고 한 번 쉬었다 올라가 봐’라고 조언했다. 저 남자 회원은 몇 번이고 다시 기울어진 벽을 오를 것이다. 아직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벽이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내가 올라야 할 벽이 보인다. 벽이라는 이름답게 땅과 수직을 이루며 굳건하게 선 모습 아름답다. 천장인지 벽인지 알 수 없는 기울기를 보다 내가 탈 벽을 보니 선녀가 따로 없다. 다행이다.
E들의 운동이라는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내가 벽을 오르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상상과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망설임은 친구의 한마디에 사라졌다.
“벽에선 결국 혼자야.”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등록 한 신규 회원 중 몇몇은 첫날, 첫 시도에 1번 홀드에서 31번 홀드를 찍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내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날 나의 최선은 13번이었다. 13번에서 14번을 넘어가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나는 왼손에 힘을 꽉 주고 14번으로 오른손을 뻗었지만, 번번이 넘어가지 못하고 떨어졌다.
베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도 팔뚝이 이렇게 펌핑되지는 않았는데. 벽을 한 번 오르면 내가 오른 거리와 상관없이 팔뚝에 피가 몰려 빵빵해졌다. 피가 몰린 만큼 굵어진 팔뚝이 모두 근육이라면 나도 31번까지 갔을 텐데.
나는 넘지 못하는 13번을 넘어 쭉쭉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창피하고, 많이 부럽고, 기가 죽는다. 그래도 클라이밍이 싫지 않다. 이 하루를 견디고 다음 날이 되면 나는 14번 홀드를 잡을 수 있고, 또 그다음 날의 나는 17번 홀드를 잡을 수 있다. 이건 경험에서 얻은 믿음이다. 정말로 나는 절대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던 14번 홀드를 잡았으니까.
매일 무조건 더 나아가는 건 아니다. 하나의 홀드를 삼 일 동안 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도달한 곳에서 퇴보하지도 않는다. 클라이밍에 퇴보는 없다. 이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삶의 많은 것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나 ‘나아간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는다’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삶의 굽이굽이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17번 홀드에서 13으로 때론 8로, 또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지에 직장을 구해 일하는 언니의 자취방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입구에서 직선으로 길게 뻗은 복도 양옆으로 저마다 숫자를 단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끝엔 공용 통돌이 세탁기가 있었다. 언니 방은 세탁기 옆 오른쪽 문이었다. 언니는 방문을 열며 세탁기 바로 앞이라 빨래를 바로 넣을 수 있어 편하다고 웃었다. 그날 언니의 미소와 빌라 복도에 진 그늘과 서늘한 온도를 기억한다.
언니와 나는 머리와 발끝에 벽이 닿을락, 말락 하는 방에 누워 새벽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언니가 불쌍한 것 같으니까. 언니는 그 방에 있다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울 수 없었다.
첫 직장, 가족, 친구도 없는 곳에서 힘들어도 말할 곳이 없던 언니는 너무너무 힘든 날이면 방에 돌아와 엉엉 울며 통장을 본다고 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숫자를 보면 눈물 젖은 마음에 해가 든다는 언니의 얼굴엔 정말 해가 들어 있었다.
언니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언니 얼굴엔 해가 없었다. 울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 흠뻑 젖어 있었다. 부모님이 사기를 당하며 언니가 모아둔 돈마저 잃었다. 언니는 노력과 위안을 잃었다. 다시 작은 방에 언니와 함께 누웠다. 새벽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내 온 마음을 뒤져도 언니에게 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언니와 마트에서 마감 세일 도시락을 사 와 먹으며 오랜만에 이야기했다. 꽃빵과 고추잡채였다.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웃음이 났다. 그래서 불쑥 말이 나왔다.
“맛있다. 그렇지?”
이어진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하고 싶은 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는 결국 꽃빵에 목이 막혀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 같은 건 바라지 않았어. 그냥, 그냥. 그냥 내 힘으로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거면 충분했어.”
내가 온 마음을 뒤져 꺼내고 싶었던 말을 언니도 품고 있었나 보다. 28번 홀드까지 잡았던 언니가 출발 홀드인 1번이 아닌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서 다시 1번에 서기까지 언니는 1년이 필요했다. 언니는 그때 갔던 28번 홀드에 가지 못했고, 갈 수 없다. 이제 우린 전혀 다른 방향과 번호의 홀드만 잡을 수 있다. 클라이밍과 달리 인생은 그렇다. 놓친 홀드는 사라지고, 시간은 흐른다. 그때 그 순간, 그 홀드는 미련으로만 남는다.
나는 조금 늦었지만, 언니가 먼저 잡았던 28번 홀드쯤 온 것 같다. 나도 언니처럼 뒤로, 또 뒤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혹은 29번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의 클라이밍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가 몇 번 홀드에 가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성을 오른다. 내 노력이 꼭 31번 홀드까지 나를 데려다주지 않으며, 누군가는 운으로 31번까지 한 번에 쭉 오르기도 한다. 불합리하다고 바닥을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을 꽉 쥐며 울기도 했다. 어째서 언니와 나는 이렇게 떨어지고, 밀려나야만 하는지 억울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나의 선생님은 클라이밍 입문 6개월 차라고 한다. 검은색 단계를 하고 있으니 나보다 무려 3단계나 앞서 있다. 나이를 떠나 분명한 선생님이다.
나는 28번에서 29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다. 5학년 쌤은 나에게 발을 더 뻗어야 한다고 했지만 28번 홀드는 너무 미끄럽고, 발을 멀리 뻗으면 28번 홀드를 놓치고 떨어질 것만 같다. 벽에서 보는 홀드는 왜인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을 때보다 훨씬 멀게 느껴진다. 5학년 쌤은 능숙하게 나에게 알려 준다. 발로 여기 홀드를 밟고 손을 옮기며 된다고. 떨어질 것 같은 기분에 집중하지 않고 쌤을 믿고 발을 뻗는다. 나는 떨어지지 않았고, 자세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홀드를 잡은 손과 발이 삼각형을 이룬 덕분에 나는 다음 홀드로 손을 뻗을 수 있게 됐다. 물론 다음 홀드에서 바로 떨어졌지만 나는 나아갔다. 신이 나서 5학년 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거 봐요. 안 떨어졌죠?"
밀려나도, 떨어져도 결국에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면 다음으로 간다. 이걸 5학년 쌤에게 배운다. 역시 선생님은 나이가 없다.
힘이 빠져 의자에 앉아서 새로운 회원이 초록색에 도전하는 걸 보고 있는데 왠지 내가 타는 것만 같고 긴장이 된다. 제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거의 다 왔다.
'제발' 입에서 절로 이 소리가 나온다.
5학년 쌤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기분 나쁘지 않아요? 나보다 늦게 왔는데 더 잘하면? 나는 기분이 나빠서 열심히 했어요.”
1주 차의 나라면 잘하는 새로운 회원에게 질투가, 이런 질문을 하는 5학년 쌤에게는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려 2주 차이고, 5학년 쌤의 질문에는 악의도 비꼼도 없다. 그저 자신과 다른 나에게 묻는 것이다.
“쌤, 저 무려 2주째 초록색 도전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나와의 싸움 중이라고요.”
쌤과 내가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뭐 어떤가. 이게 내 속도인걸. 인생의 클라이밍을 타다 보니 나를 앞서 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건 익숙하다. 아마 이 클라이밍장에도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또 앞서가는 수많은 사람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그리고 내일의 내가 더 나을 테니까. 나는 그걸 믿고 그냥 한다. 운동 클라이밍도, 인생 클라이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