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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얼꿍얼 May 23. 2024

우리는 파랑에서 태어났어

햇빛 아래 선 우리는 모두 온전히 파랑이었다

"요(이)맘때가 정말 좋아."

"아이스크림?"

"계절······."



헛웃음이 나는 통화처럼 이맘때 파주의 날씨는 정말 좋다. 파주에 온 후로 날씨가 허락하는 날이면 산책하러 다니고 있다. 출판단지에는 같은 모양의 건물이 없어 눈이 즐겁다. 또 풀과 나무가 많아 이 계절이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을 보며 산책하기 좋다. 햇빛 아래 선 모든 것이 반짝이고, 색이 살아난다. 햇빛을 머금은 모든 색이 새삼스럽다. 


책도 그러면 좋겠지만 책은 햇빛 아래 오래 두면 좋지 않다. 출판단지 건물 중 1층에 책을 가득 놓아둔 곳이 있다. 하필 채광이 잘 되는 유리로 된 곳이라 그곳의 책들은 모두 파랑이다. 파란 책이 가득한 건물 앞을 걷고 있을 때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OO인데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은 전 직장의 이용자였다.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바로 전 직장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나를 부르는 호칭과 어눌하지만 정확한 말 때문이다. 내가 일했던 곳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였다. 무엇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이용자들은 직원 모두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거기선 나도 선생님이었다. 꽤 오래전 퇴사했지만 드물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선생님, 원래 센터 말고 갈 수 있는 다른 센터 있어요?"


○○씨는 정확한 한국어로 물었다. 센터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만둔 나에게까지 전화를 한 걸 보니 문을 닫은 센터를 대신할 다른 곳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국 거점 센터들은 이번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작년 12월 문을 닫았다. 작년 하반기 갑작스러운 통보 이후 센터 직원들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들었지만 결국 폐쇄를 막지는 못했다. 이후 지자체에 지원받아 재개관한 곳도 있지만, 그마저도 예산이 크게 줄어 전처럼 활동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 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은 역대 최대라는데 관련 기관은 축소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까지 연락해 온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모든 일이 무책임해 보였다.


퇴사 후 외국인 지원과 관련 없는 일로 이직해 아무 정보도 없던 나는 ○○씨에게 '미안하다'와 '아는 것이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씨는 실망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전화는 짧았지만, 익숙한 실망과 체념이 느껴져 입이 썼다. 


우리는 자주 선 밖으로 밀려난다.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선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존재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일이다. 센터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늘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교육부 소속이었던 나는 상담 과정을 자세히 볼 일이 없었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상담 선생님이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 달라 부탁해 상담에 함께했다. 상담실에서 만난 외국인의 얼굴에 포도알 같은 멍이 가득했다. 상담은 내가 상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상담이라기보다 폭언과 폭행 상황 진술에 가까웠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마음대로 퇴사하거나, 사업장을 바꿀 수 없어서 사업장을 바꾸려면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의 끔찍한 경험이 고용노동청 담당자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중간중간 필요한 내용을 더 물어가며 내용을 다듬었다. 상담은 이미 그 자체로 끔찍한 기억을 더 잘 느껴지도록, 하지만 과장 없이 사실만 꾹꾹 눌러 담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너무 꾹꾹 눌러 가슴이 턱 막혔다.

진술로 부족할까 싶어 그 당시 함께 있던 다른 외국인을 증인으로 데려오고,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 첨부했다. 날카로운 기억을 잘 벼리고 벼려 전달한 그날, 내담자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다듬은 글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이 마음에 박혀있다.


"욕을 했어요. 외국인이라고 나를 때렸어요."


산책을 하며 살이 많이 탔다. 매일 차는 시계에 가려져 있던 팔목과 비교해 보면 살이 많이 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보니 햇빛 아래 색이 바뀌는 건 인쇄물만이 아니다. 피부색이란 이렇게 쉽게 변한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에 와서 단지 조금 더 어두운 피부색이란 이유로 또 다른 선 밖으로 밀려났다. 아마 나 또한 선 밖에 밀려났을 것이고, 밀려날 것이다. 나는 아시안이라서, 여성이라서, 노동자라서 수도 없이 많은 이유로 선 밖으로, 밖으로 밀려난다. 이 선에서 공평한 것은 누구도 예외 없이 밀려난다는 사실 단 하나이다. 


교육사업 중 문화 행사로 쪽 염색을 기획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얀 손수건을 푸른 쪽빛으로 물들이는 활동이었다. 처음엔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한 분이 같이 하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느새 나도 함께 어울려 염색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무늬가 나올 수 있게 고무줄로 천을 묶고, 쪽빛 물을 들였다. 푸른 물에 손을 담그니 밝고, 어두움 없이 우리는 모두 푸르렀다. 서로 다른 무늬가 나왔지만, 색만은 모두 쪽빛인 손수건이 바람에 나부끼며 말라갔다. 


잘 마른 손수건을 차고 돌아갔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목에, 팔목에, 발목에 멋을 내어 손수건을 두르고 함께 걸었다. 증명할 필요 없는 행복이었다. 


햇빛 아래 선 우리는 모두 온전히 파랑이다.


우리는 모두 파랑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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