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거운 단추처럼 덜렁거리는 마음
겨울옷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매일 입은 코트 단추가 살짝 헐거워져 있었다. 직접 단추를 달아본 적이 없어 이걸 어쩌나 싶었다.
나는 세탁소집 딸이다.
이 말은 어떤 옷을 사도 단추의 꿰임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좋은 옷을 사도 그 옷에 단추가 달려 있다면 그 단추는 엄마 손에 새로 꿰어지고 만다. 엄마가 단추를 다는 모습은 꽤 절도 있다. 강단이 느껴진달까. 단추를 다는 데 무슨 강단이며 절도냐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사실이다. 긴 실이 바늘을 따라 천과 단추를 통과할 때는 부드럽게, 천과 단추를 바투 붙일 때면 실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주어 팽팽하게 실을 당겨야 한다. 이 모든 과정과 움직임이 강물처럼 보였다. 부드러운 것도 같고, 거침없는 것도 같았다. 단추를 다는 일에서도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해온 사람의 숙련과 단호함이 보였다.
실이 천을 통과할 때 아주 작지만, 쓱- 하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과 다른 평온한 소리가 있다. 조용한 가게에 그 소리만 반복되고, 이만 되었다 싶을 때 엄마는 천과 단추 사이를 실로 돌돌 돌려 감아 준다. 천과 단추 사이에 목을 만드는 것이다. 목이 있으면 단추를 잠그는 일이 더 편해진다.
단추를 다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면 좋겠다. 아주 간단하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단추를 꿰는 일이 사실 굉장히 섬세한 일이며 동시에 결과물이 튼튼해야 하고, 목을 만들며 사용할 사람의 편의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단추를 다는 것만큼 마음을 다는 일에도 능숙한 사람이다. 본가에 살 때는 종종 엄마와 함께 잠을 잤다. 본가에서 두 번째로 큰 창은 안방에 있었는데,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그 창 너머로 달이 보였다. 달이 동그란 보름밤이면 엄마는 꼭 소원을 빌었다.
"달님이 크게 떴다. 소원 빌자."
"······."
엄마는 자기가 단 단추처럼 단단히 매인 소원을 가지고 있어 망설임 없이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소원을 빌지 고민하다 아무 소원도 빌지 못했다. 엄마와 달리 내 소원들은 헐거운 단추처럼 내 안에서 덜렁거리다 떨어져 달님에게 닿지 못했다.
동그란 달이 단추처럼 보인다. 단단히 매인 달에 소원을 비는 동그란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동그래서 늘 내 안을 구른다. 돌돌돌, 달달달, 또르르 모든 동그란 마음들이 구르며 합창한다. 어떤 마음들이 내 안에 매일지 궁금하다. 또, 엄마는 어떤 시간을 거쳐 구르던 마음을 단단히 매어 두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최근 하나의 마음을 단단히 뀄다. 이전 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래 침잠했던 시기의 이야기를 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읽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3년 동안 나는 내 안에 떨어진 단추처럼 구르던 마음을 달았다. 마음을 실로 단단히 꿰고, 돌돌돌 감아 목을 만들던 시간.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그 단추를 잠갔다. 단추를 잠가 틀어졌던 나와 마음의 시간을 맞췄다.
서로 어긋난 시간이 맞춰졌다는 걸 안 날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던 꿈을 꾸던 아이가 드디어 나에게 와 서로 손을 잡게 되는 순간 마음만은 평범하지 않았다. 당장 뛰어나가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다.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 꿈을 나침반 삼아 걸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직접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그림책에 들어갈 그림을 고르며 꿈의 언저리에 섰다.
단지 구르던 마음 하나를 단단히 꿰어 잠갔을 뿐인데 삶이 조금 가볍다. 아쉬움에 덜렁거리던 마음 없이 미련 없이 걸을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제 직접 단추를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