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의 시대 저속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내 인생 1배속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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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로 유명한 교수님이 저속노화 식단을 설명하고, 노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소개하는 동안 나는 오늘도 빨리 감기를 누르며 가속에 박차를 가한다.
11분 남짓의 영상을 보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조금만 흥미가 떨어져도 나는 재빨리 화살표 버튼을 현란한 속도로 두드린다.
중간에 나오는 광고도 타이밍에 맞춰 건너뛰기 위해 미리 커서를 대기시킨다.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가성비를 따지며 10분 넘는 시간을 투자할 영상이 아니면 가차 없이 빨리 감기를 누르고,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르고르고르고르고르고 골라 겨우 영화 한 편을 틀고도 배급사를 빨리 감기로 넘기고 도입부를 빨리 감기 하며 재빨리 내용을 파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이번 영화도 글렀다. 나는 몇 번의 빨리 감기 끝에 영화에서 중도하차한다.
내가 빨리 감기를 누르지 못하는 유일한 성역은 이제 숏츠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다 도파민에 뇌가 절여져 영영 쇼츠만 보며 살게 되는 걸까. 과거에 나는 예술 영화도 곧잘 보고 그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하던 사람인데. 16부작 드라마도 거뜬히 시청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서글프다.
과거에 내가 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나를 만들었는데 나는 이제 인생 영화, 드라마를 만나기도 전에 빨리 감기의 속도에 떠밀려 저 멀리 쇼츠의 풀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영 이야기와 멀어질까 무섭다. 나는 이야기가 제일 좋고, 이야기를 구전처럼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서사형 인간인데.
아니, 아직 하나 남았다. 내가 빨리 감기를 할 수 없고, 도파민에 절여지지 않은 성역이.
북클럽을 신청했다. 거리는 집에서 제일 가깝고, 매주 책모임을 진행하지만 신청자에 한해 참석하면 되기 때문에 일정이 있으면 빠질 수도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참석하며 자주 보는 사람들과 스몰토크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제일 완벽한 것은 목적에 맞게 사교보다 책 읽는 활동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북클럽은 가지고 온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1시간 30분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집중해서 책을 읽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리고 종료 30분 전에 각자가 읽은 책에 대해 읽은 만큼만 이야기한다.
처음엔 책 소개와 책 이야기가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가서 이야기를 해 보니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책 소개는 거창할 것 없이 정말 간단히 말해도 된다. 나는 집을 나오기 전까지 무슨 책을 가져가지 고민하다가 겨우 고른 책을 소개하며 '사놓고 읽지 않아 읽어보려고 가져왔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소설인 줄 모르고 유명한 상을 탔다고 해서 샀는데 이제 보니 소설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바보 같은 소개도 다 들어준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합니다.)
독서 후 이야기도 어려울 게 없다. 정말 감상이 없을 때는 줄거리만 말하기도 했다. 읽은 것을 그대로 말하기만 해도 문제가 없어서 참석 횟수가 늘수록 책을 고르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 됐다.
처음엔 빨리 감기 인간인 내가 한 시간 동안 진득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애초에 책엔 빨리 감기 버튼이 없다. 나는 속독도 못 한다.
빨리 감기 버튼도 광고도 없는 세상에 내가 들어간다.
내가 찾던 성역이 여기 있다.
물론 매주 책을 읽어도 사람이 바뀌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빨리 감기의 노예로 살고 있다. 다만 '헤매는 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을 빌리자면 '읽는 만큼 내 장르다.'라고 할 수 있겠다.
빌려 쓰고도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걸 보니 책이 날 바꾸지 못했다는 게 확실히 증명이 됐다. 나는 한국 문학을 좋아하던 사람이다. 책장의 대부분이 한국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던 시절도 있다. 그 외에 다른 장르는 도통 읽히지 않았다. 외국어 소설도 읽히지 않았다. 특히 에세이를 읽는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생각을 왜 이렇게 좋아할까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장르는 에세이다.
힘이 든 날 두고두고 꺼내 읽을 에세이 책도 한 권 만났다. <엔딩까지 천천히-이미화>이다. 읽으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 에세이가 들어와 나를 울릴 거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빨리 감기 없는 세상에서 나는 새로운 장르의 땅에 발을 디뎠다.
에세이야 말로 1배속의 장르라는 생각이다. 에세이는 과거의 이야기도, 미래의 이야기도 결국엔 현재로 끌고 온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 새로 쓰이는 순간, 미래에만 있을 것 같은 꿈의 실마리를 현재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깨달음의 순간까지. 그 어느 장르보다도 현재에 있다. 1.25에서 1.5로 가속하던 나를 에세이는 1로 데리고 온다.
에세이는 만나는 순간까지 1에 맞춰져 있다.
과거에 내가 에세이를 읽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 당시 내게 맞는 이야기를 품은 에세이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0.5배속의 사람이 1배속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1.5배속 사람도 1을 품을 수 없다. 아마 내게 맞는 에세이 책을 만날 때 필요한 것은 '운'이다. 현재 나에게 맞는 이야기를 품은 책을 만나는 '운' 말이다. 많이 읽을수록 그 확률이 커질 테니 책 읽는다는 사람들 모두 입을 모다 나를 다독다독이겠지만, 다독이 아니더라도 작은 확률로 좋은 책은 만날 수 있다. 에세이 장르를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도 <엔딩까지 천천히>를 만났으니 꼭 다독만이 인생책을 만나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순전히 1배속을 살고 싶다는 나의 열망이 만든 '운'이다.
1배속의 운은 현재에만 있다.
나는 최근 빨리 감기를 참고 또 참으며 <중쇄를 찍자>를 봤다. 아직 4화지만 2화에 서점 직원들에게 유령 같다는 말을 듣는 출판사 영업직 코이즈미 준의 이야기가 나온다. 준은 늘 부서이동 신청을 하지만 번번이 거절 당해 어쩔 수 없이 영업팀에서 일을 한다.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만 보는 나와 닮은 모습의 준은 주인공과 함께 일하게 되며 현재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편집부이지만 임시로 맡은 영업 일에서도 책을 잘 홍보하기 위해 지금에 집중하는 주인공,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영업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대해 메모하는 상사. 지금을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준은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2화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장면은 닳은 구두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이 순간을 위해 빨리 감기를 참았는 걸 알았다. 빨리 감기를 참아내고 얻은 감동은 내게 1배속으로 온 행운이다.
빨리 넘겨 보고,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고 넘기는 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볼 수 없다면 간단히 알아도 되는 것들은 그렇게 넘기는 게 좋은 방법이다.
다만 가끔 그렇게 넘겨버리는 이야기 속에 1배속의 행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 이 마음이 1.5배속 할 이야기도 '1배속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고, 그렇게 나는 또 다른 1배속의 행운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나는 북클럽에서 때때로 실패하기도 하지만 꽤 자주 1배속의 행운을 만나고 있다. 유튜브는 여전히 어렵지만 영화나 드라마도 1배속으로 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얻은 행운도 꽤 된다. 여러분도 1.5배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1배속의 행운을 발견하길 바란다. 오늘은 올해 나의 에세이 원탑 <엔딩까지 천천히>의 한 구절을 빌려 마무리하고 싶다.
최대한 돌아서 가세요. 엔딩까지 천천히,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