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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파물해 Aug 24. 2022

가난한 천재 화가가 탄생하려면

귀인을 만났던 A

스물넷 봄, 나와 희주는 OO면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다. OO면은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논밭 끝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참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사실 열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오직 학교 교사들만 바라보았다. 나와 희주는 마치 구원자라도 된 양 하루하루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 나보다 미술 교사 희주가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기초가 부족한 OO면의 학생들을 위해 그녀는 아예 국어, 영어, 수학 공부를 아이들과 함께 했다.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온 희주가 아이들에게 따로 무료 국영수 과외를 해주는 셈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덩달아 나도 부족한 열정을 보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희주의 눈에 들어왔다.


A는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고3 남학생이었다. A는 부모의 이혼 후 할머니가 계신 시골 OO면으로 내려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일을 하다 2주에 한 번쯤 OO면에 내려와 A를 만나는 삶을 살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A는 대학에 대한 미련도 없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국영수, 그리고 더 가망 있는 사회탐구 문제집에 파묻혀 허덕이고 있을 때 A는 혼자 연습장에 그림을 끄적이곤 했다. 그렇다고 취업에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A는 담임교사의 진로 상담에는 “나중에 공장 가겠죠? 몰라요, 지금은.”이라고 대답하며 학교에서 운영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 취업 프로그램이 사실 얼마나 가혹한지에 대해서는 그 때 몰랐다.)


고3은 미술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이 되어서야 희주는 결근을 한 수학 선생님 대타로 고3 교실에 가서 A를 처음 보았다. A의 책상 위에는 수학책 대신 연습장 하나가 있었고, A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희주는 무심코 그 아이의 연습장을 넘겨보았다. 평소에 A가 취미 삼아 끄적인 스케치 그림들이 있었다. 한두 장 넘기다 그만두려던 그녀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그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서 희주는 나를 만나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A, 완전 천재야!” “천재라고? A가?” “그래! 내가 부러워했던 부류의 아이들이야. 미술 학원 한번 다닌 적 없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그리지?”


그때부터 희주는 A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A의 천재성을 칭찬해 주고 미술로 대학을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A는 얼떨떨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보여 준 사람은 희주가 처음이었으며, 그림을 떠나 칭찬 자체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드렁하던 A도 희주의 설득에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대학이라는 로망이 점차 살아나고 있었다. 마침내 설득된 A가 말했다. “저는 돈이 없는데요.”


이 한마디에 희주는 백방으로 A가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A의 연습장 사진을 몇 장 찍어 보내드렸다. 나는 그 시절의 A를 보며 그 열정이 마치 대치동 극성 엄마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희주는 일본의 꽤 괜찮은 대학 미대 입학전형 및 장학금 제도를 알아냈다.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는 파격적인 전형이었다. 더욱이 이제 신설된 장학 제도라 경쟁률이 높지 않았다. 마침 전형 마감 기한이 일주일 남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A는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희주는 전화로 A의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무리 희주라도 신규였기 때문에 이런 열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A의 아버지는 A가 이런 능력이 있다는 소리를 처음에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가능하다면 일본 대학에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천재라 하더라도 그 천재성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스물네 살의 나는 발령 동기 희주와 A의 만남으로부터 보았다. 어린 우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이러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교실 구석에 엎드려 있던 A는 부모도 주지 못한 희망을 우연히 만난 희주로부터 받았다. 이제 몇 가지의 서류 준비와 대학에서 원하는 형식으로 그린 그림 두 점만 있으면 팔부능선은 넘는 셈이었다. 일본 대학의 한국 내 접수처에 그림을 발송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일주일 안에 그림을 그려와야 했다.


“아. 제대로 다시 그려 오라고요?” A는 조금 부담스러운 말투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림에 필요한 물감 및 재료는 희주의 개인 용품과 학교 물품을 제공해 주었다. 희주는 그 뒤로 A를 마주칠 때마다 잘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어제는 빨리 자 버려서 못했어요. 이제 할게요.” “그래, 시간 늦으면 안 돼. 오늘 집에 가서 꼭 그려. 아니면 담임 선생님께 말해 줄까? 오늘 다른 수업 대신에 미술실에 와서 그려도 돼” “아니에요. 집에 가서 그릴게요.” 그렇게 대답하고 교실로 돌아간 A는 또다시 연습장에 그림을 끄적였다.


그리고 다음 날, A는 등교를 하지 않았다. 원래도 자주 학교를 빼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다음 날 등교한 A에게 희주는 다시 물었다. A는 얼굴을 조금 찌푸리고 “하려고 했는데 어제 그냥 잠들었어요.” 희주는 이제 답답한 목소리로 A한테 말했다. “이거 정말 중요한 기회야. 아무한테나 오는 혜택이 아니라고. 너도 하고 싶다고 했잖아. 꼭 그려와야 해. 꼭.” “아 알겠어요.” 그렇게 약속한 날이 되었다. A는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다. “자느라 이제 일어났어요.” “그림 그리다가?” “아니요, 게임하다가요.” A가 단순히 게임을 하다가 늦잠을 자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도, 희주는 설마 했다. 다음날 학교에 온 A에게 희주는 이제 발송 시간이 없어 자신이 직접 서울의 접수처로 가겠으니 꼭 그림을 그려 오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한 A는 그다음 날도 학교를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희주는 그다음 날 등교한 A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물었다. A는 우물쭈물하다가 "아, 그냥요!"하고 화를 냈다. 희주는 직접 A의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A의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편찮으시던지 A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를 당했던지 분명 무슨 일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할머니도 A가 게임을 하다가 늦게까지 잠만 자더라고 말했다. '그냥' 하지 않았다는 A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A의 담임 교사는 "샘. 그런 아이들 많아요. 희주샘이 신규교사로서 열심히 했는데 상처받았겠다."라며 위로했다. 희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A는 그 뒤로 희주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눈을 피했고, 그렇게 몇 달 있다가 졸업했다.


A가 사실 미대에 가고 싶지 않았던 걸까? 친구들이 대학 원서를 본격적으로 쓰던 어느 날, 데면데면하던 희주에게 찾아와 A가 또 그런 기회가 없는지 물었다는 소식을 듣고 A 또한 진심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일주일간 A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미룬 것일까? 아니면 무엇인가 두려웠을까?


나의 꿈을 위해서든, 조직에서 정해진 일을 하기 위해서든 자신 혹은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이 최소한의 성실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A는 정해진 시간 안에 약속을 지켜 주어진 과제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교사들은 종종 이러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해진 기한 안에 과제를 수행하는 것, 이것이 최소한의 성실성을 갖춘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인식조차 못한다. 정형화된 과정을 밟은 모범생들은 주어진 과제는 미리 하든 급하게 하든의 문제만 있을 뿐 무조건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성실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성실함 또한 자라면서 습득해야 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OO면 고등학교, 그리고 그 뒤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나는 이 기본 성실성조차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부모의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였고 혹은 부모조차 그 성실함을 배우지 못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 부모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부모를 그렇게 만든 사회가 있으니까. 아주 간혹 이 성실성을 뒤늦게 학교에서 배우는 경우가 있지만,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습관을 학교에서 배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교사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쉽지 않은 교정 기회를 잡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실함을 배우지 못한 이런 온갖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온전히 이 아이가 감당해야 한다.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갖춘 A는 평소 연습장에 끄적이던 그림을 정식으로 두 점을 그려 내는 수준의 성실성을 갖추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그 순간에 말이다. 가난하고 어린 천재가 귀인을 만나 꽃을 피우는 이야기는 소설과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그 어린 천재가 성실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성실함을 갖추지 못한 천재는 곧 천재성마저 잃는다. 천재성보다 중요한 것이 성실함이다.


사회학자 브루디외(Pierre Bourdieu)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차이는 단순히 경제적 차이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된 문화적 자본의 차이로 더 단단해진다고 했다. 개인은 자라면서 일종의 사회적 습관을 체화한다. 이를 '아비투스(habitus)'라고 한다. 이 아비투스는 계급별로 다르게 체화되고, 지배 계급이 체화한 아비투스를 사회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며 느낀 아비투스의 대표적인 아이템은 성실성이다. 이 성실성 또한 가정에서 배우는 문화적 자본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불성실한 누군가를 바라보며 온전히 개인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성실성을 체화하지 않아 놓고 부모 탓, 사회 탓을 한다면 아마 브루디외조차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A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A 또한 서른이 넘었을 나이이다. A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찾아온 또 다른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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