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에게 닥친 일
“어제 어떤 아저씨가 뒤에서 갑자기 내 엉덩이 만졌다요.”
어느 날 우리 반 E가 한 말이다.
자세히 물어보니 전날밤 친구와 놀고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교복 치마 속까지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지고 갔다는 것이다. 모르는 아저씨였고, 갑자기 도망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했다. 고 1 여학생이 길바닥에서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
나에겐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었다. 대학 시절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나름 깨어 있다고 자부했던 난, E가 놀라지 않았는지 잘 위로해 주고 E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했다. E의 잘못이 아님은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타이트하게 줄여 입은 E의 치마가 나조차 신경 쓰였기 때문에 혹여나 누군가 지적할까 봐 미리 걱정하여 한 말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 또한 그날의 사건과 E의 치마 길이를 연관해서 생각했다는 뜻일 것이다. E에게 상담을 권유했지만, E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E의 1차 성폭력 피해는 넘어갔다.
사실 E의 치마 길이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E가 사는 동네였다. 당시 우리 학교 아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나 또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E의 주거환경을 잘 알고 있었다. 각종 술집과 큰 모텔, 작은 모텔, 여인숙 등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곳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나 또한 당시 주거환경에서 오는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 나조차 취약한데, 십 대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영향일 리 없었다.
그 뒤로 E가 더욱 신경 쓰였다. 물론 우리 반에는 자퇴하고 내년에 아빠가 될 C를 포함하여 담임을 정신없게 만드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E가 특히나 마음이 쓰였다. E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로, E는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근처에 살았는데 E와는 따로 약속을 잡아 1~2주에 한 번씩 만나는 관계였다. E는 가끔 만나는 어머니와는 좋은 말만 하고 싶어 했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E는 사이가 좋았다. E와 함께 사는 아버지는 일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E와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출근 전에 테이블 위에 만원을 올려두고 나가시면 E는 그 돈으로 하루를 산다. E는 아버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E는 근원적으로 외로운 아이였다.
나는 당시 학교 때문에 혼자 자취하면서 폭식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도의 우울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내 우울함을 유발하는 여러 요인들 중 E와 겹치는 것들이 많았다.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 성장환경에 대한 기억과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주체적으로 서지 못한 외로움이 그것이다. E와 나, 10대 후반 여성과 20대 후반 여성, 물론 구체적인 상황이 다르지만 그 근원은 같았다. E가 느끼고 있을 공허함과 외로움이 당시 내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E에게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왔고, 나는 친한 친구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그 친구도 교사로, 마침 근처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친구는 방학 중에도 어떤 학부모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 물었더니, 자기 반의 생각 없고 다소 모자란 남자아이가 다른 학교의 어떤 여자아이를 성희롱했고, 자기 반 남학생 학부모가 싹싹 빌며 신고를 말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여자아이는 부모님 없이 직접 그 학부모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했다. 그래, 머리 아픈 일이 있구나 정도 생각하고 친구 이야기를 넘겼다.
2학기가 시작하고 하루 이틀 뒤, 우연히 E를 상담하게 되었다. 방학 때 잘 지냈냐고 물었더니, E가 방학 때 성추행을 당해 혼자 해결하는 중이라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른바 ‘남소’를 받아 어떤 남학생을 룸카페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E와 내가 살던 동네에는 룸카페가 성행하고 있었다. 카페이긴 하지만 밀폐된 구조였다. 거기서 오늘 소개받은 남자아이가 E의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졌다고 했다. E는 화를 내며 바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고, 그 아이에게 성추행으로 신고하겠다고 따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 친구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스쳤다.
겁을 집어먹은 가해 학생은 본인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때부터 엄마의 아들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가해 학생 어머니는 E가 같이 저녁식사를 할 가족이 없는 것을 알고 E를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해주고, 또 달랬다. E는 가해 남학생 학부모와 만날 때 항상 혼자 움직였다. E는 부모가 모두 있었지만, 자신을 항시 보호해 주는 진정한 의미의 보호자는 없었다. E는 자신이 똑 부러지게 따지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보호자가 있는 가해자 남학생 앞에서 너무나 약자였다. 가해 학생의 어머니이건만, 따뜻한 집밥을 거절 못하고 그 초대에 응하는 E였다. 그 자리에서 똑 부러지게 가해 학생의 잘못을 지적한들 무엇하랴.
그러니까 전화로 들었던 내 친구네 반 남학생 이야기가 바로 우리 반 E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땐 무심하게 흘려 들었는데 피해자가 우리 반 아이였다니, 같은 지역 학교였지만 정말 세상 좁다. 또 내가 피해 학생 담임인데, 가해 학생 담임교사인 친구보다 늦게 상황을 인지했다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이 고군분투 혼자 상황을 해결하려 뛰어다닌 E가 안쓰러웠다. E를 통해 가해 학생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게 되었다. 진심으로 E를 어르고 달래고 계셨다. 그중 나를 진정으로 분노하게 한 문자는 이거였다.
“E야. 저녁 시간에 언제든 우리 집 와서 밥 먹고 해. 이렇게 잘 지내다가 우리 @@(가해 학생)이랑 사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지?”
사귈 수도 있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또 우리 반 E의 심리적 취약 상태를 활용하여 자기 아들을 구제하려는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때만큼은 내가 E의 엄마 아빠 대신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은 심정이었고, 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 피해 학생이 우리 반 아이이며,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내 친구가 그 가해학생의 보호자도 아닌데 말이다. 오버와 과몰입으로 점철된 내 지난날이다. E를 설득해서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도 알렸다. 부모님이 아셔야만 했다.
그날부터, 대학시절 나의 여성주의 공부가 빛을 발휘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여성의 전화에 이 사건을 연결했고,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었다. 피해자의 증언은 경찰서가 아닌 여성의 전화가 마련한 공간에서 한 번만 필요했다. 대학시절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접했던, 피해자로 하여금 여러 번 증언하게 하고 가해자를 대면시키면서 2차 가해하는 일은 없었다. 여성의 전화 측에서 E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고, 내가 상담에 동행하였다. 부모 상담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하여 어머니가 한 두 차례 상담에 참여하셨다.
모든 절차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정작 E가 상담 자체에 만족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업을 빼고 담임의 독점적 관심을 받으며 외부 기관에 함께 나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말이다. 왜 E의 상담에 대한 반응이 기억나지 않지? 성폭력 사건을 대충 넘겨왔던 지금까지의 학교 분위기와는 다르게 아주 현명하게 여성주의적 매뉴얼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스스로 고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E 대신 나 자신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변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으며 나 자신에 뿌듯했던 걸까?
가해 학생에 대한 절차는 피해자 측에 통보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친구가 그 아이의 담임이었기 때문에 소식을 들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법정구속되었다고 한다. 즉, 재판정에서 선고가 떨어지자마자 진행요원에게 양쪽 팔을 붙들린 채 끌려 나가 바로 구속된 것이다. 당연히 가해 학생은 벌벌 떨었고, 이를 본 그 학생의 어머니는 오열했다고 들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가 책에서 보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하긴 했다. 그 아이의 담임인 내 친구에 따르면 자기 반에 진짜 문제아는 따로 있고, 이 아이는 어리바리한 2인자 격이라 했다. 나쁜 짓도 어설프게 하더니 그 아이부터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세상사란 그런 것이다. 친구는 그날 이후 학부모의 부탁으로 가해 학생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친구 사이에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담임이 되어 한쪽은 구속을 시키고 한쪽은 탄원서를 작성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여하튼 E의 2차 성폭력 피해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가해 학생이 응당 받아야 할 처분을 받고 말이다.
그 뒤로 나는 계속 E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다음 사건은 옆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옆반의 여자아이 하나가 장기 결석 중이었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 아이들 SNS에서 그 아이를 욕하는 말들이 퍼져 있었다. 주로 ‘걸레’ 같이 성적으로 욕하는 말이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자신이 전혀 모르는 다른 반 학생도 자신을 가리키며 “쟤가 걔래” 하고 수군대는 것을 듣고 도저히 학교를 갈 수 없다고 담임선생님께 호소했다.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SNS에 그런 말을 퍼뜨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E였다. E는 그 아이의 절친이기도 했다.
나는 분노했다. 나와 함께 여성의 전화에 상담을 다니며 성폭력에 대해 공부하고 위로를 받았던 E가 그런 짓을 했다니. E를 불러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E는 인정했다. 나는 E에게 이 또한 성폭력이고, 2차 가해라며 다그쳤다. 너 또한 피해 경험이 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다그쳤다. E는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따졌다. E가 자신이 헤어진 남자친구를 뺏어가 그 남자친구 집에 아예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한 때 친구였던 아이가 그 남자와 계속 잠자리를 하고 있으니 그 아이는 ‘걸레’라는 것이다. 그 아이는 심지어 “너는 오빠랑 못 자주는데, 나는 자 주니까 오히려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니야?”라는 말도 했다며 E는 분통을 터뜨렸다. 10대 아이에게 듣기 힘든 말이지만, 그런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도 그런 캐릭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E를 다그쳤다. 나의 여성주의적 매뉴얼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함께 해결했던 E였다. 그랬던 E가 이런 가해를 하다니. 이 글을 쓰며 그때를 떠올려 보니, 그때 나는 열정만 넘쳤지 너무나도 미숙한 담임이었다. 인풋이 있으면 당연히 아웃풋이 당연히 따를 것이라 생각했고, 상담을 받는다는 행위 자체를 너무나도 대단하게 생각했다. 정작 상담에 대한 만족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말이다. (실제로 E의 일이 있고 1~2년 후 나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상담을 받아보고, 상담이 만사형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나의 여성주의는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탁상 여성주의였다. 세상의 문제는 복잡하고 다층적인데, 내가 공부한 몇 개의 용어에 모든 상황을 도식적으로 도입했다. 급기야 내가 열심히 했기에, 학생이 따라와 주는 것을 내 성과로 여기고, 성과가 바로 따르지 않자 E가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 화를 냈다. 여러모로 못났고 모자랐다.
그날 밤 E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E에게는 성인이 된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디지 못하고 원룸을 얻어 따로 나가 살고 있었다. 그래봤자 스물한두 살의 나이였다. 그 언니가 내게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우리 동생한테 2차 가해 어쩌고 하셨다는 게 사실이에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당시 화는 나도 나 있었다. 언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것은 E의 잘못이고 2차 가해가 맞음을 항변했다. 내게는 E가 특별히 애정 있던 학생이고, 특히나 본인 또한 피해자였기에 더 다른 사람을 배려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 또한 마음이 아프다고(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나 E의 언니도 물러나지 않았다. E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선생님은 모른다고 했다. 흥분한 E의 언니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E의 언니를 계속 추궁하여 중요한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성폭력이 있었다. E가 당한 3차 성폭력이었다.
알고 보니 E는 그 사이 우리 반 남자아이로부터 또 ‘남소’를 받았다. 나이는 고3인데 자퇴한 아이였다. 그렇게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남자친구의 집에도 가게 되었다. 집에는 부모님도 계신다 하여 믿고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부모님은 아들이 드나드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가 있으시다 했고, 그렇게 남자친구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E는 계속 거부했지만 강제로 성관계를 갖게 되었다. 성폭력이었고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었다. 그날 E는 울면서 뛰어나와 상황을 어머니와 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와 언니는 가해자를 불러 무릎을 꿇게 한 다음에 다시는 E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약속을 받고 사건을 끝냈다. (그때는 이 말을 그대로 믿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혹시 합의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E가 당한 3차 성폭력이었고,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황이 종결되었다.
E는 미안하여 나한테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E의 어머니도 나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생각해 보면 나한테 꼭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미안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의 방식을 너무나 잘 아는 E와 E의 어머니는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E에게 성추행을 한 2차 성폭력 때의 가해자는 법의 처벌을 받았는데, 아예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무릎 한번 꿇고 조용히 넘어갔다. 소년원에 있을 아이가 이 일을 알면 어찌 생각할까? 억울해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상 일이란 원래 그런 걸까? 이치에 맞지 않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내가 크게 일조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E의 3차례의 성폭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E가 처한 환경이다. 특히 2,3차 성폭력이 그랬다. E는 사랑이 고픈 아이였고 외로운 아이였다. 하교 후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다. E는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남자친구를 만나려 했고, 급한 E에게는 질 나쁜 남자들이 몰렸다. 부모로부터 자존감을 부여받지 못한 E는 자신을 지키는 대신 위험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그런 모습을 나 또한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 후 어느 날, 상담실에서 E를 안아주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
물론 E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무릎을 꿇리고 다시는 접근하지 않겠다 약속을 받아 낸 가해자가 자신의 친구와 사귀어 잠자리를 하는 것은 왜 기분이 나빴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가해자가 아닌 친구에게 말이다. 친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걸레’라고 꼭 욕을 해줄 만큼 분노했어야 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불완전한 E의 심리를 알기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그 뒤에도 지금이라면 부리지 않을 오지랖을 부려, E의 어머니께 딸과 함께 사셔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유했다. 그것이 세 차례의 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머니는 나와의 상담 이후 정말로 E와 잠시 함께 사셨지만, 곧 고충이 따랐다. 원래 E는 어머니와 너무나도 사이좋은 모녀 관계였다. 언젠가 학교 교무실에서 E와 어머니가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교무실에서도 서로 보자마자 포옹을 하고 뽀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함께 살게 되면서 달라졌다. 늦은 귀가, 짙은 화장과 짧은 치마, 남자들과의 연락 등이 어머니 눈에 띄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계가 어그러지는 힘듦을 나에게 토로하셨고, 그 뒤로 얼마 후 E는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상 다시 혼자 살게 된 것이다.
2학년에 올라가서도 E는 가끔 연락을 해 왔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병원에 간병인이 없이 입원하셨다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혼자, E는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한 혼자가 된 것이다. E는 그렇게 더 외로워졌다. 어느 날은 새벽에 휴대폰이 울려 발신자를 보니 E였다. 잠에서 깨어 전화를 받았는데, E는 엉엉 울고 있었다. 지금 술에 취했는데 내 생각이 났다고 하면서 계속 울기만 하다가 끊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E를 만나 무슨 일 있는지 물으려 했는데 민망한지 피하여 더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E는 졸업했다. 졸업 후 연락이 한번 왔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했다. 그 뒤로는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만 소식을 접하고 있다.
아, E의 담임이던 해 마지막에 다른 반 수업을 들어갔다가 모범생에 너드미 갖춘 남자애 둘이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중 한 아이가 옆 친구를 가리키며 “샘, 얘가 샘 반 E 좋아한대요. 3월부터 좋아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E를 좋아한다는 아이는 쑥스럽게 웃으며 긍정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정색했다.
“그럼 진작 E한테 고백했어야지.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아니 부끄럽잖아요. 왜 그래요 샘~~“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그 남자아이에게 난 진심으로 아쉬워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든 일이 발생하기 전에 E가 착한 남자를 만났으면 그 모든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내 계산대로 될 일이었나? 또다시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될 것이라 생각하여 혼자 아쉬워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