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정확한 날짜가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나에겐 그저 가십에 불과한) 이선균의 사망 소식을 회사 점심시간 직전에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기분 나쁨'이었다. 이 감정이 언제 들었지? 옆자리 후배는 "구하라, 설리요?"라고 했지만 아니다. 그네들의 죽음과 같은 충격이 아니었다(일단 그들의 죽음은 기분 나쁨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배우 조민기의 죽음'이었다. 이선균과 조민기 모두 개인적인 호감이 있는 연예인이었고, 성적인 사건에 휘말렸으며, 결국 죽음으로 본인의 수치심을 덜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결을 같이 했다.
혼자만의 기분 나쁜 감정을 끌어안고 점심을 먹고 난 후, 시간이 지나갈수록 여론이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 것은, 그저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 '이선균이 느낀 국민적 수치심에 대한 동정 - 너라면 살겠냐?'를 주제로 온 인터넷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깨졌다. 우리는 알 권리를 넘어서 '알 필요도 없는 기정사실'을 소비했다. 경찰의 강압 수사는 도를 넘었다.. 등등 드르등등. 특히 고인과 내연녀(맞나?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았어서 그녀가 내연녀인지 협박녀였는지 현생이 바쁜 나로선 잘 모르겠다)와의 통화내역까지 까발려진 건 불을 지핀 거나 마찬가지다! 뭐지? 그럼 나도 이제 그를 동정해야 하나? "어떡해... 룸쌀롱 간 것도 전국에 까발려진 채 죽다니... 아아 그는 좋은 배우였습니다(?)..."
그의 마약 의혹이 불거지고, 그 마약을 접하게 된 계기가 룸싸롱에서 만난 내연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내가 떠올린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그가 불과 몇 년 전에 아카데미의 땅을 밟았고, 그 작품을 찍은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감독인 봉준호였으며, 그 봉준호 감독이 다른 거장 중 한 명인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계에 만연했던 '룸싸롱 문화'를 없앴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스스로 앞장서서 영화계의 악습을 깨뜨렸던 감독이, 그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 한 명이 이런 추문에 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신이시여, 또 한 명을 구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사고가 나거나 피해를 입으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후회 또는 원망을 한다. 예컨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굳이 버스를 타고 집이 아닌 길을 향하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우리는 '아,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탈걸...' '저 차는 왜 저렇게 과속을 해서 내가 탄 버스를 쳤지?' 후회와 원망은 돌고 돌아 결국 원론적인 문제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러게 난 왜 그게 먹고 싶어 가지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에 대한 사실 관계에서 내가 느낀 감상은 딱 그것이다 '그러게 왜 룸싸롱 같은 델 가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내연녀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물론 다른 곳에서 불륜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더욱 지저분한 느낌은 덜 수 있었을 테다), 마약을 접하는 방식도 좀 더 적절(?)했을 테고(물론 마약을 접하는 방식에 건전한 방식이란 없다), 본인과 내연녀와의 관계에 대한 협박도 줄어들 테고... 인터넷에서 본 의견 중 가장 공감되는 글 또한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좋은 친구, 좋은 배우였던 사람조차도 룸싸롱을 가는 세상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출처 : 트위터(본 글을 찾게 되면 꼭 캡처를 올리겠다)
그렇다, 우리는 그를 추모하기 이전에,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경찰의 강압 수사? 그가 받은 협박? 마약 의혹? 그것이 다 어디서 생겼는지, 본업 존잘에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었던 그가 갖게 된 추문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왜 그의 죽음이 석연치만은 않은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 더 떠올려야 한다.
그런 곳, 안 가시면 되겠습니다. 룸싸롱, 안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것 안 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