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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ug 02. 2022

뒤늦게 쓰는 디테일한 출산 후기

유도분만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밥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유도분만을 시작하면 아기를 낳을 때까지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주변에 라면집에서 억지로 밥을 먹고 입원했다. 


병실에 들어가서 병원 옷으로 갈아입고 IV를 꽂았다. IV를 통해 수액, 분만을 유도하는 피토신 호르몬, 그리고 나의 경우 페니실린을 투여하게 된다. 간호사가 매우 어설퍼서 바늘도 한 번에 꽂지 못하고 헤매서 팔에 멍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태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이 간호사는 금방 다른 간호사로 바뀌었다. (12시간마다 간호사 교대 근무) 나의 경우, Group B Strep 박테리아 positive라 분만 전까지 계속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한다. Group B Strep은 어른인 나에겐 무해한 박테리아지만 아기에게 감염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서 분만 전에 4시간마다 페니실린을 IV에 연결해서 지속적으로 투여했다. IV만 넣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항생제를 투여하기 시작하자 팔 부분이 아려왔다. 배에는 고무밴드로 모니터 2개를 연결해서 아기 심장 상태와 자궁의 수축 강도를 확인했다. 아기가 움직일 때마다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게 장치의 위치를 바꿔주어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내 아기는 잘 움직여서 한 30분마다 위치를 바꾼 것 같다. 


이것들을 연결하고 2시간 후쯤 내진을 했다. 내진은 질 안에 손가락을 넣어서 자궁 내막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진찰이다. 의사에 따라서 아주 아플 수도 있다. 자궁 내막이 10센티 열려야 분만을 하는데 나의 경우 1주일 전 마지막으로 산부인과에 갔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안 열렸다고 했다. 임신 후기에 성관계를 많이 하면 좀 열린다고 한다. 자궁내막을 여는데 보통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따라 하는 피토신을 쓰는데, 피토신을 쓰면서 balloon이라는 장치를 같이 쓰자고 한다. 이 장치는 자궁 안에 들어가는 물풍선인데 자궁 안에 넣은 풍선을 부풀려서 자궁 내막이 4~5센티 열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게 되면 유도 시간이 6시간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풍선은 막대 끝에 풍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풍선 쪽은 자궁 안으로 들어가고 막대 쪽은 허벅지에 테이프로 붙였다. 내진 후 풍선과 피토신 호르몬 투여를 시작했다. 풍선은 12시간 후에 뺀다고 한 것 같다. 의사 한 5~6명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내 벗은 흉한 몰골을 다 보고 내진하는 것까지 보고 갔다. 거의 30분마다 새로운 사람, 보던 간호사, 의사, 레지던트 등등이 들어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확인하고 간다. 병원은 정말 많은 노동이 필요한 곳인 것 같다. 


4시간쯤 후부터 생리통처럼 수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통이군. 아주 아프진 않고 살만했다. 그렇지만 수축을 시작하니 허벅지에 연결되어 있는 풍선 쪽을 건드리면 아팠다. 화장실 가기도 너무 불편했다. 1시간 후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왔다. 심호흡을 하며 심한 생리통과 같은 고통을 참았다. 풍선을 체크하러 의사가 들어와서 풍선을 당겼다. 1센티정도 열렸을까 말까라고 했다. 슬슬 아파서 진통제 생각이 났지만 겨우 1센티 열렸는데 진통제를 맞고 싶지 않아서 견디었다. 진통제를 맞으려면 몸을 가만히 둘 수 있을 때 맞아야 하는데 (척추에 맞는 거라 움직이면 안 된다) 그래서 아주 많이 아프지 않을 때 맞아야 한다고 한다. 맞으면 하반신이 마비된다고 했다. 그러면 푸시가 잘 안 되기도 한다고 해서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몇 분마다 아픈 생리통이 계속되었고 남편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런데 의사가 풍선을 당기고 나서부터 고통이 많이 심해졌다. 2시간 후 고통이 너무 심했다. 누군가 걸레 빨듯이 자궁을 쥐어짜는 느낌이고 실제로 자궁에 수축이 오면서 배가 경련하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밤 11시였는데 도저히 이 상태로 자는 건 불가능하다. 아까부터 해오던 호흡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내진 결과 아직도 자궁 내막은 아직도 겨우 1센티 열렸단다. 10센티 열려야 분만이다. 이 분만, 오래 걸릴 것 같다. 오래 걸린다면 지금 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너무 아파서 나도 남편도 잘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옷에 피가 흥건하다. 겨우 겨우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도저히 이 빌어먹을 풍선과 부대끼며 침대에 다시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10분을 서서 진통을 참으며 심호흡하며 고민했다. 침대에 앉을 때 허벅지와 자궁에 연결되어 있는 풍선을 건드릴 텐데, 생리통이 가장 심할 때 자궁 안에 부드러운 막대를 넣어 휘젓는다면 느낌이 이럴 것이다. 간호사를 호출해서 에피듀럴 진통제를 맞겠다고 했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남편을 나가라고 하고 척추와 등에 주사를 연결했다. 자궁 수축이 너무 아파서 척추에 놓는 주사는 아프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반신이 마비되면 화장실에 갈 수 없어서 소변을 빼는 카티더라는 장치를 연결했다. 자동적으로 소변이 빠져나온다고 한다. 에피듀럴을 맞으면 혈압이 내려갈 수 있어서 혈압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약도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몸은 5가지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척추에 에피듀럴과 혈압약, 방광에 소변줄, 자궁에 풍선, 오른쪽에 IV/항생제/피토신, 배에 모니터 2개.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에피듀럴을 맞자마자 수축의 고통의 강도가 낮아진 걸 느꼈다. 45분마다 자동으로 진통제가 나오고, 10분마다 내가 눌러서 샷을 더 맞을 수 있다고 했다. 10분 뒤 에피듀럴이 퍼졌다. 아직도 자궁 수축이 느껴지지만 움직임만 느껴질 뿐 고통스럽지는 않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를 조금 움직일 수는 있지만 설 수는 없다. 


새벽 4시. 풍선을 뺄 시간이 되었다. 빼고 내진했다. 겨우 2센티 열렸단다. 4~5센티 열린다며? 화가 났다. 이미 호르몬은 최대치로 투여되고 있어서 더 올릴 수가 없다.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아기를 왜 억지로 빼려고 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주는가. 다행히 고통은 없다. 조금 더 잤다. 


다음날 아침 9시. 내진, 아직도 2센티. -_- 이제 할 수 있는 건 양수를 터트려서 진통이 더 강해져서 자궁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것뿐이라 의사가 들어와서 양수를 터트렸다. 에피듀럴때문에 하반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양수가 터졌다고만 한다. 


30분 정도마다 자세를 바꾸어서 앉아있다가 옆으로 누워서 다리 사이에 짐볼을 끼우기를 반복했다. Birthing ball 위에서 바운스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으니 병원 침대를 지지대 삼아 팔로 몸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몸을 흔드는걸 계속 반복했다. 푸시하는 것도 계속 연습했다. 몸에 바늘이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아프고 불편했지만 계속했다. 12시쯤 내진 결과 4~5센티가 열렸다고 한다. 처음으로 1센티 이상이 열린 것이다. 너무 기뻤다! 

 

입원한 지 24시간째에 진통이 강해진 건지 진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피듀럴을 계속 맞고 있는데도 말이다. 45분마다 나오는 것 외에 추가로 맞지 않으려 했는데 추가로 눌러도 고통이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고통은 5 정도가 되었다. 심호흡으로 참으려 했는데 간호사가 벌써 이렇게 아프면 나중에 많이 힘들 거라고 마취과를 부르자고 한다. 마취과 의사가 들어와서 어디가 아프냐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에피를 맞을 때 왼쪽 등줄기가 시원해지는데 나는 오른쪽만 수축이 느껴져서 아팠다. 에피가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들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도 오른 다리 감각이 더 잘 느껴졌다. 의사는 바늘을 다시 끼우는 대신 강도를 센 걸 쓰고 약이 들어가는 쪽이 위로 가게 누워서 아픈 쪽으로 흘러가게 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약이 센게 들어가자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다리의 감각이 더 약해졌다. 


3시 반 내진 결과 아직도 4~5센티라고 한다. 진통은 1~2분 간격으로 계속 오는데 자궁이 안 열려서 자칫하면 아기 컨디션이 나빠지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지. 


4시 갑자기 아기 머리가 훨씬 내려와 있는 게 느껴졌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던 진통이 이제 한참 밑에서 느껴졌다. 간호사에게 말했지만 조금 전에 내진해서 다시 내진하지 않을 거니 기다려 보라고 한다. 아까 하던 바운싱을 계속했다. 


5시 내 담당 의사가 퇴근했다. 아기 머리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사는 좋다, 계속하라, 하지만 얼마 전에 내진했기 때문에 내진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하여간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몸이 이런 무기력한 상태이니 더 성질이 난다. 새로운 의사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냥 그녀가 퇴근하는 편이 더 낫다고 위안 삼았다. 


7시 새로운 의사가 인사하러 들어왔다가 내진을 했다. 중년의 중국 할머니다. 아주 경력이 많아 보이시고 신임이 간다.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한다. 30분 후에 출산할 것 같다고 한다. 간호사가 이분 정말 잘하시는 분이라고 귀띔한다. 이 간호사도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출산에 참여한다고 하니 너무 좋았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거울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거울을 보면서 분만하는 방법)


에피를 맞고 있었지만 푸시는 아까도 계속 연습했고 감각이 느껴졌다. 누워서 한쪽 다리는 남편이, 한쪽 다리는 간호사가 접어서 들고 나는 들린 두 다리를 감싸 안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10초 동안 묵은 변비를 해소하듯이 힘을 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1번 푸시하자 거울에 머리카락이 난 아기 머리가 조금 보였다. 솔직히 좀 기괴하고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2번 푸시하자 의사가 이제 세게 푸시하지 말라고 한다. 인터넷에 보니 아기가 거의 나오려고 할 때 세게 푸시하면 회음부가 더 많이 찢어진다고 한다. 그 후 살살 2번 푸시하자 아기가 나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를 내 배 위에 올려놓았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크림색 점막 같은 게 피부를 덮고 있는 빨간 아기가 내 배 위에 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기를 낳다니. 내 배 위에 있는 생명이 내가 만든 거라니. 내 질에서 지금 사람이 튀어나왔다니! 그걸 또 내가 보았다니! 


엄마도 울고 남편도 놀라는 가운데 의사가 내 회음부를 꿰매었다. 한참 꿰매는 걸 보니 많이 찢어졌나 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기는 겨우 2.17kg라고 한다. 작다더니 정말 작다. 뱃속에서 2주 더 키웠어도 3킬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작은 걸 알고 나니 빨리 유도하길 잘했나? 싶으면서도 저 작은걸 억지로 꺼낸 게 미안했다. 아기가 눈을 뜬다. 아기가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신기하다, 말도 안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쯤 후 휠체어를 타고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남편이 뭐가 먹고 싶냐고 해서 한국 치킨을 시켰다. 아기가 검사를 마치고 들어왔다. 3시간마다 모유를 주거나 분유를 먹여야 하고, 그전에 발을 찔러서 혈당을 검사한다고 한다. 


밤새도록 애가 좀 자려고 하면 들어와 찌르고, 또 찌르고 아기가 너무 불쌍했다. 애는 찌르기 전에는 잘 잤는데 찌르면 당연히 일어나 울었다. 그렇게 잠시 울다 그치곤 했다. 우리도 좀 자려고 하면 누군가 들어와서 내 피를 뽑던가 애 피를 뽑고, 애를 데려가서 이 검사 저 검사하느라고 애도 너무 불쌍하고 우리도 너무너무 피곤했다. 남편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의료진들이 너무 감사하지만 빨리 퇴원하고 싶다. 


-----산후 후기


병원에서 빨리 퇴원하고 싶어서 안 아프다고 하고 멀쩡한 척했는데 집에 오자 몸이 너무 안 좋다. 먼저 오줌이 새는데 기침하면 좀 나오는 요실금 정도가 아니라 뚜껑 없는 물병처럼 줄줄 나온다. 소변을 보려는 의도가 없었는데 일어서니 소변이 그냥 흘러나온다. 갑자기 내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라니 너무 절망스러웠다. (EDIT: 이때는 몰랐지만 3주 후부터 요실금이 거의 없어졌고, 4개월이 지난 지금 전혀 요실금 문제없음) 


걸을 때마다 장기가 출렁거린다. 소화도 되지 않는다. 변비가 심하다. 오한도 있고 배가 계속 아프다. 늘어났던 자궁이 다시 수축하는 거라고 한다. 오로 (자궁벽을 덮고 있던 피)가 한 달쯤 나올 거라고 해서 계속 생리대를 하고 있어야 한다. 보통 생리대는 꿰맨 자리를 자극해서 너무 아파서 강아지 소변 패드를 접어서 생리대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다. (병원에서 이렇게 해줘서 알았음) 아파서 똑바로 누우면 아파서 옆으로 돌아 누워야 한다. 출산을 다들 하는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대단하다. (EDIT: 이때는 몰랐지만 3주 정도가 지나자 변비 외에 다른 부분들은 모두 해결되었음) 


둘째를 낳는다면 에피를 좀 더 일찍 맞을 것 같고, 출산 전에 짐볼 타기를 열심히 해서 자궁이 좀 열린 상태로 가면 수월할 것 같다. 나는 자궁문이 전혀 열려 있지 않아서 진통을 오래 해서 밥도 못 먹고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게 괴로웠다. 이제는 아기가 38주에 태어나도 너무 잘 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37주쯤부터 짐볼을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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