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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 May 11. 2023

꽃을 받는 기분

실용주의자지만, 생화 꽃다발은 환영입니다

나는 실용주의자이고, 미니멀리스트에 가깝다.

유행에 따라 옷을 사기 보다, 익숙하고 마음에 드는 색감의 옷을 꾸준히 입는 편이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새로운 것들로 공간을 가득 채우다 보면, 내가 정말로 아끼는 것들이 가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대비 수일 내에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꽃은 가장 비실용적인 것들 중 으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꽃을 꽤 좋아한다. 선물로도 자주 받고, 집에 가는 길에 스스로 꽃을 사주기도 한다.


꽃집에 놓인 꽃들은 어떻게 그 곳에 왔을까.

겨울을 견디고 봄에 싹을 틔우며 겨우내 탐스러운 꽃봉우리를 열어낸 가장 아름다운 때, 꽃은 깔끔하게 줄기를 잘려 꽃집에 온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위해 예쁘게 포장되어 전달되는 꽃의 다발.

그렇게 누군가의 행복한 하루를 기념한 후, 함께 집에 온 꽃다발은 포장을 풀고, 유리병에 담겨 서서히 시들어간다.


이번 내 생일엔 두 개의 꽃다발을 받았다. 하나는 아빠에게, 다른 하나는 애인에게 선물 받았다.

애인이 준 꽃다발은 내가 좋아하는 푸른빛 색감이었다. 약속 장소 근방의 후기가 좋은 꽃집에서 예약해 받아왔다며 자랑스레 나에게 건냈다.

파란색과 보라색이 적절히 섞여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수수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사랑스러운 꽃다발이었다.


아빠가 준 꽃다발은 진한 분홍빛이 돋보였다.

거대한 꽃잎을 자랑하는 진분홍 꽃과 함께 장미, 카네이션, 잔꽃들이 서로 자기주장하듯 화려하게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꽃다발의 정석'같은 느낌이었다.



애인의 꽃다발(왼쪽)과 아빠의 꽃다발(오른쪽). 모습은 다르지만, 꽃다발을 안았을 때 품 속이 따스해지는 기분은 같았다


집에 와서 두 꽃다발의 포장을 풀어 유리병에 담고 보니, 새삼 두 꽃다발의 차이가 선명했다.

나의 슬픔과 즐거움, 고민과 우울함까지 이해하며 내 마음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애인의 꽃다발과,

마음은 서툴러도 나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아빠의 사랑이 담긴 꽃다발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먹지도 못하는 꽃을 선물로 왜 주냐고 한다는데, 받은 꽃을 프사로 설정하며 혼자 흐뭇하게 웃는 나는 그런 유형은 아닌게 분명해 보인다.

비록 주말동안 놀러갔다 오니 꽃들은 대부분 시들어 버렸지만, 아직 생기가 있는 꽃을 솎아내 새로운 화병에 담아내니 또 그럴 듯 해졌다.

언제나 강렬한 행복과 설렘이 지속될 순 없겠지만, 1년에 한번 꽃을 활짝 피어내는 풀처럼 인생의 꽃피우는 순간을 충분히 추억하며 일상도 그럭저럭 만족해하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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