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달씨 Feb 03. 2024

어떤 날의 재료


곧 있으면 나의 첫 책 <오늘의 밥값> 출간 1주년이 된다. 내 생일도 남의 생일도 잘 챙기는 편이 못되는데 어쩐지 내 책의 생일은 잘 챙겨주고 싶어서 작년 말에는 포부가 컸더랬다.


‘양장본 특별판을 만들어야지.’

‘북토크라는 것을 해 봐야지.’

‘출간 1주년 기념으로 다음 에세이를 낼까.’


정작 이맘때가 되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아무래도 돈 문제가 가장 크고 그다음엔 역시 에너지의 문제. 나는 마구 나서서 일을 만드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작년 한 해는 특별했다. 그런 기운으로 어떻게 책을 그것도 두 권*이나 만들어 낼 생각을 했을까. 1년 전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 돌아봐도 잘 모르겠다. 돈이나 에너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 넉넉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새로운 길로 움직이고 데려가고 나아가게 하는 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살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기이한 힘의 정체란.


중요한 건, 그런 힘에 둘러싸여 있을 때의 나는 결코 기본값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그런 상태의 내가 기본값이고, 그에 못 미치는 나는 ‘게으른’ 것으로 이해했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이런 나, 저런 나가 있고 그중에서도 주로 많이 차지하는 나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고 주저하는 쪽이다. 그릇이 작다,라고 표현되는.


그래도 종지만치 작은 내 그릇은 매일 매 순간 좋은 것들을 길어 올리려고 노력하는 그릇이다. 조금씩 담긴 그것들을 매번 소중히 모아 어딘가에 담아둔다. 그러다 어느 날 때가 되면 차곡차곡 쌓인 그것들을 곱게 혹은 거칠게 빚어 세상에 내보이는 날이 올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기이한 힘의 정체는 작은 그릇에 하루하루 쌓고 모은 나의 일상의 조각들이었다. 평범한 오늘이, 걱정하고 주저하는 이 시간들이 결국 어떤 날의 재료가 된다. 소중히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역시나 내 책의 생일은 조용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찾는 이도 별로 없이 몇몇 서점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한 채 밀려날 날을 기다리고 있을 나의 책. 생존의 기록이자 증거인 나의 책. 존재만으로 벅차고 고마운 그에게 미리 축하를 보낸다. 내게로 와줘서, 내게 힘을 주어서 고마워. 부끄러움도 모르고 전해보는 편지이자 오랜만에 꾹꾹 눌러 적어보는 <오늘의 밥값>.



*<오늘의 밥값>, <어쩌다 마당 일기> | 글 그림 수달씨 | 수달북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모두 꿈에 빚져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