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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Feb 15. 2024

돌아보면 전부 소중한 기억들이야

입춘의 마당을 바라보며


톡. 토독. 톡.

마당과 집 사이에 설치해 둔 비닐 커튼으로 빗방울이 맺혔다 떨어진다. 어제는 입춘이었고, 오늘은 꼭 봄이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비가 내린다. 거짓말, 금방 오지 않을 거면서. 한두 번 속나.


요즘 남편과 이사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각자 조금씩 다른 이유지만 결론은 이사로 모아진다.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는 이들 중 상위 1프로 안에 들 법한 사람이다. 게다가 목공일을 하는 작업실도 추운 곳이다 보니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하루종일 추위에 떠는 것이 이제 지긋지긋한 모양이다. 나도 추위라면 충분히 질렸다. 하지만 내가 이 시골집을 떠난다고 하면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다. 나는 좀 쉬고 싶다. 온갖 걱정으로부터 말이다. 언제 어디가 무너질지 모르는 낡은 집에서 추위 걱정, 날씨 걱정, 동파 걱정에 외출도 편안하지가 않고 아이를 오래 혼자 두지도 못한다. 겨울이 지나도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잡초와 싸울 걱정, 무너져가는 담벼락이 비나 바람에 버텨줄까 하는 걱정. 150평의 마당은 소심한 내게 150가지의 걱정도 함께 안겨준다. 난 이것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아닌 것 같다. 옥상에서 스티로폼 박스에 토마토 한두 모종 키울 때가 좋았다.


어제저녁에는 모처럼 마당에서 숯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제 조금씩 마당을 활용할만한 계절이 올 것이다. 불평불만으로 보낸 겨울의 시간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렇게 이 집에서 5년을 보냈다.

“돌아보면 다 추억이고 소중한 기억들이야, 그렇지?”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도 “응,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몸이 기억하는 시간들이다. 지난 기억에 대해서는 원망은 없고 사랑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고 느낀다. 떠난다고 생각할수록 지나온 시간들이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이상하고 양가적인 감정들.


우리는 이 집에 오기 전보다 5년씩 더 늙었고 아이는 다섯 살에서 열 살이 되었다. 집도 그만큼 더 늙었다. 우리 가족에게 다시없을 과분한 추억들을 안겨주고 늙어간다. 고마운 마음과 더 돌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우리 가족에게 한 시절을 안겨준 이 시골집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사를 간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렇게 이별의 마음을 준비하다니. 하여간 설레발의 여왕이다.

아직 떠나는 거 아니니까 남은 시간들도 잘 지내보자. 어쨌든 봄이 오니까. 우리에게 주어질 또 한 번의 봄이.


2024/02/05



*아직 할 이야기가 남은 듯 하여 연재를 마치려던 <어쩌다 마당 일기> 카테고리를 다시 열었습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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