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다지 정이 많은 사람이 못된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흠뻑 빠지긴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는 편이 아니다. 마음 그릇이 크지 못해서 이 나이를 먹고도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서 더 행복을 느낀다. 오늘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동생에게 커피를 얻어마신 데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으니. (원체 나이주의를 부리지 않는 편인데 하물며 얻어먹는 일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서두를 적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제 내 마당에 대한 애정이 온통 식었나 보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3년여간의 마당 생활을 묶어 <어쩌다 마당 일기>라는 에세이집을 올 7월에 출간하고 지금은 12월이다. 그간의 이야기들, 마당을 향한 온갖 감정들을 책에 쏟아붓고 텅 비어버렸다. 지난여름 길고 긴 장마에 농사는 망하고, 잡초에 지치고, 에너지마저 고갈되어 나는 더 이상 마당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길고양이와 새들의 휴식처, 풀이 아무렇게나 자라는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맞았다.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주말마다 손님을 초대하고 마당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퍽 많은 돈을 들여 철마다 꽃을 심었다. 지금 그 시절은 가고 없다. 마당만 그러하랴.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다. 뜨거운 사랑이 지나간 뒤의 남은 일상은 뜨겁기 이전의 상태보다 더 무료하기 마련. 뜨거움이 식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지는 낙엽을 막을 방법을 인류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음. 어떻게 말해도 나의 애정이 식었다는 사실을 포장할 수가 없다. 게으르고 싶은 자의 구차한 변명일지 모른다. 맞다, 나는 이제 게으르고 싶다. 부지런해야만 살아남는 이 시대에, 이 시골집의 생활에 저항하고 싶다. 올해에는 늘 선물 받던 대봉감도 들어오질 않아 곶감도 매달지 못했다. 차라리 잘됐다. 감 깎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녔다. 곶감 한번 못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한때는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의 화목보일러 노동도 이제는 옛말이다. 이사 오고 초반엔 추운 날 두 시간에 한 번씩 나무를 넣느라 남편이 고생 께나 했다. 전 집주인에게 구입한 나무를 다 소진한 뒤로는 나무값이나 기름값이나 매한가지라서 이제는 거의 기름보일러를 때고 전기히터를 튼다. 뭘 때든 춥기만 한 시골집이지만 나무 넣는 노동이라도 줄일 수 있다. 낭만이 다 무어랴. 사람이 살고 봐야지.
낮에도 영하에 머무는 강추위, 제대로 된 겨울이 찾아왔다. 아침해보다 아이가 더 일찍 눈을 뜨는 계절. 난방텐트에서 나오면 캄캄하고 차갑게 식은 거실 온도는 10도 언저리다. 히터를 켜고, 실내용 기름난로를 켜고, 가습기에 물을 채운다. 현관문을 열면 두피가 찡하도록 차갑고 파르스름한 공기가 마당을 감싸고 있다가 문틈으로 후루룩 들어온다. 코끝에 새 공기를 잠시 채우곤 얼른 문을 닫는다. 난로 앞에 세 가족의 신발을 쪼르르 놓고 그 곁에서 으슬으슬한 몸을 덥힌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추워, 추워.” 하며 머리에 까치집을 달고 나오면 커피 한 잔과 캐럴 재즈 음악으로 시작하는 아침. 이 시골집에서 맞는 여섯 번째 겨울 아침이다. 나의 애정이 식든 말든 계절은 찾아오고 아침은 찾아온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시골집의 추위도 이제는 당연한 루틴이 되었다. 일상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일까.
어떤 것도 새롭지 않고 늘 거기에 있어 익숙한, 당연한 일상. 풀 한 포기에도 벌레 한 마리에도 눈을 반짝거리던 나는 이제 여기에 없다.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까지가 이 마당에서 배워야 할 마지막 과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봄은 오고, 다시 일상을 열어가고, 어떤 특별함이나 반짝거림이 없이도 하루하루를 나아가는 일.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맞이해야 할 계절 앞에서 나는 또 어떤 것에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식어가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늘어나는 배 둘레만큼이나 두툼한 나이테를 몸에 두르고 나무처럼 늙어가면 좋겠다. 언젠가는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으로. 그렇게 특별하지도 별나지도 않지만 올곧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되면 좋겠다. 작은 마당 한 켠에 자리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흔하디 흔한 나무 한 그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