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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Mar 18. 2024

휴식을 블렌딩


자연에서 온 좋은 향을 맡는 것을 좋아한다. 아로마 용품을 파는 온라인 숍에서 에센셜 오일을 사서 디퓨져나 룸 스프레이를 만들곤 하는데 이제 재료가 거의 다 떨어졌다. 평소에는 레몬 오일 한 가지로 만드는 편이지만 이번 참에 여러 가지 오일을 섞어볼까 하고 사이트를 뒤져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레몬, 자몽과 같은 감귤 계열의 향은 ‘상향’이라고 해서 향이 강한 대신 휘발성도 강해 쉽게 향이 날아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라벤더, 제라늄과 같은 꽃에서 추출한 ‘중향’ 오일, 시더우드라던지 샌달우드 등 나무에서 추출한 ‘하향’ 오일을 함께 블렌딩 하면 좋다고 하는데... 선택 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영 어려운 일이긴 하다. 몇 가지 오일을 장바구니에 담은 뒤 사이트를 닫았다. 어려운 결정은 다음으로 미루기.


대신 조금 남은 로즈마리 오일을 물이 담긴 캔들 홀더에 따라 성냥으로 초를 켰다. 상큼 시원 은은한 향이 금세 코끝에 맴돌고 주변 공기를 감싼다. 로즈마리는 정신을 맑게 하여 잠을 깨우는 데 좋고 라벤더는 숙면에 좋다고 한다. 낮에는 주로 레몬과 로즈마리 향을 맡는다. 좋은 향은 퍽 좋은 휴식이다. 예전엔 자주 그렇게 했었는데. 겨울 내내 거실에 히터와 실링팬을 돌리느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봄이 온 주말, 모처럼 히터를 끄고, 테이블을 깨끗하게 치우고, 아로마 휴식을 취한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다. 욕심에는 책도 읽고 싶은데 그것까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로마를 블렌딩 할 때 강조되는 중요한 원칙은 많아야 2~3가지 정도의 오일을 섞는다는 것이다. 그보다 넘치면 좋지 않다고 한다. 휴식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욕심이 넘치면 그때부턴 휴식이 아니라 일이나 숙제처럼 되기도 한다. 좋은 음악, 좋은 향, 좋은 책, 맛난 차와 간식, 좋은 경치, 좋아하는 사람까지 모두 눈앞에 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특히 향을 맡으면서 커피나 차, 음식을 먹으면 여러 향이 섞여버려 제대로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하기까지 하다.) 무엇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때로는 무향, 무음악(혹은 침묵), 읽지 않음, 먹지 않음, 보지 않음, 만나지 않음이 휴식이기도 하다. 넘치면 아니한 만 못하다. 여백이 궁극의 휴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좋은 향과 음악을 선택한 대신 독서는 포기하였는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로즈마리가 정신을 너무 맑게 했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좋다. 충만한 주말의 오후다.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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