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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pr 22. 2024

오전의 우울


오늘 같은 날 행복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손쉽게 빵이나 짜고 단 것을 섭취해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런 것들이 가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금 이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중이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숨을 쉬면서 잔뜩 무거운 이 공기 사이를 부유한다. 나는 검고 푸르고 불투명한 물속에 있는 것만 같다. 물이 아니라 아예 젤리 같기도 할 만큼 물질적이다. 마치 해파리의 몸속 같다. 나는 혼자 있다. 떠있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를 떠다닌다. 찾는 이도 없고 투명하고 밝은 미래도 없다. 이럴 때는 눈을 감고, 아니면 아예 눈이 없는 채로 아가미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오전의 백화점 푸트코트. 직원들의 어깨마다 내 것과 같은 검고 무거운 젤리 공기가 내려앉아 있고 그들은 검은 아우라를 내뿜으며 첫 손님을 기다린다. 매대의 빵은 신선해 보이지만 어쩐지 죽어있는 것도 같다. 죽은 것을 입에 넣고 싶지가 않아서 나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지나는 사람들을, 냉장 매대 속 음식들을, 검은 마스크를 낀 직원들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 월요일의 이 민폐 손님을 누구도 내쫓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이긴 할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감정은 다 날씨 탓이고 이 공기는 전부 저 회색빛 구름 탓이다. 버스에 올라타 눈을 감고 한숨 자면 지나갈 일이다. 구름 따위에 질 내가 아니다.


11시 1분. 오전은 짧다. 오전의 우울은 조금만 버티면 지나간다. 점심은 집에 가서 샐러드를 먹을 것이다. 오늘은 꿀을 한 방울 넣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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