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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pr 27. 2024

공조팝을 잘랐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마당의 공조팝 가지를 잘라다 거실에 꽂아주었다. 원래 일부러 자르는 일은 잘하지 않았었는데...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정확히 언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때 내 것이었던 집과 마당이 도로가 되어 사라질 예정이다. 나는 아마도 이 주소지의 마지막 거주자가 될 것이다. 게으른 집사라 그렇다고 해서 더 잘해주는 것도 없지만 문득문득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한 세월을 생각하게 된다. 이 집과 마당이 거쳐온 세월, 그중 내가 누린 세월을.


나는 어디가 아픈 채로 이 집에 들어왔고 다행히 지금은 거의 다 좋아졌다. 집과 함께 울었고 날씨와 함께 웃었고 담벼락 어디가 무너질 때마다 같이 무너졌고 보일러가 고장 나 아파하면 같이 아팠다. 겨우겨우 맞이한 이 짧고 좋은 봄날. 나는 이제 어딘가로 옮겨가서 지리한 생을 이어가고 이 집은, 내가 심거나 심지 않은 마당 위의 모든 것들은 땅으로 흙으로 돌아갈 테다. 앙상한 지붕으로 떠받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을 거다.


너의 한 세상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 생의 마지막 몇 년간 나를 품어주어서 영광이었다. 그런 이별의 말들을 하기가 쑥스러워 잘 자란 공조팝나무 가지 몇 대 잘라다가 꽂아주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오래 보고 싶어서.


두 해 전엔가 묘목을 사다가 심은 공조팝이 이만큼 무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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