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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May 24. 2020

씨앗, 너무 애쓰지 마.

둘째의 사춘기

둘째 영어 선생님께서 노래를 불러 녹화해서 보내라며 팝송 외우기 숙제를 내주셨다. 하기 싫다며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둘째... 저 아이의 행동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떡하지?


잠시 뒤 달래듯이 설득했다.


"너 동생 노래 외워 녹화하는 숙제 부러워하지 않았니?"

"그건 그냥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게 좋다는 거였어요. 제가 노래하는 거 찍어서 톡으로 보내는 거 싫어요."

"선생님 개인 톡으로 보낼 건데 왜?"

"선생님은 툭하면 단톡에 공유하시잖아요. 극혐이에요."

"그럼 뒷모습이나 멀리서 찍을게."

"됐어요. 절대 안 해요."

"그럼 노래하지 말고 기타만 칠까? 그 노래 기타로 연주한 거 넘 좋던데... 너 기타 좋아하잖아."

"다 싫어요.  다! 다!!"

(쾅)


아흐, 저것을...


다음날까지 불러도 시큰둥하고 밥 먹으러 나오라고 몇 번을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학원 숙제는 성실히 하던 녀석이고 동생에게 먼저 제시된 노래 숙제를 부러워했기에 화내는 포인트를 모르겠다. 계속되는 히스테리를 지켜보자니 내 인내심이 단숨에 바닥나 버렸고 끝내 폭발해 버렸다. 이제는 엄마보다 더 크겠다, 힘도 세겠다 물러나질 않는다. 싫다는 거 강요하는 엄마가 너무 싫단다. 싸움의 결론은 못된 가시내와 막무가내 엄마로 끝났다.




종일 기분이 안 좋은데 큰딸이 다가온다.


"엄마 저랑 산책 갈까요? 날씨도 좋은데."

"산책? 글쎄..."

"저 너무 운동 부족 같아요. 엄마랑 같이 걷고 싶어요."

"... 그래 나가자."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대충 찍은 벚꽃도 예술이다. 한 번에 찍은 무보정 사진이 이 정도라며 친구들에게 전송도 했다. 큰딸과 손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는데 참 좋더라. 






"서윤아, 엄마는 하윤이가 참 고민이야. 이번 일도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솔직히 모르겠어."


"엄마! 사춘기 때 노래 부르는 거 동영상 찍어 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하윤이 화난 거 이해해요."


"이해한다고? 정말? 엄마가 너를 겪었으면서도 사춘기 이해를 진짜 못하나 보다."


"그래도 자기 생각 얘기도 않고 막무가내로 화낸 하윤이 잘못도 분명히 있죠."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강요하지 마세요. 그때는 그냥 다 싫어요."


"너는 참 이렇게 좋은 친구 같은데..."


"엄마!!! 잊으셨어요? 제 사춘기를??"


"어? 너?... 으하하하 그래 맞다. 진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엄마가 그걸 잊었네. 그때 생각하면 진짜!"


"등짝 스매싱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죠."


"미안...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안해. 돌아보면 별 일도 아니었는데."


"아녜요. 저도 그때의 제가 전혀 이해 안 돼요. 그냥 다 싫더라고요. 그러니 하윤이 이해해주세요."

.

.

.

첫째의 사춘기를 겪고 나서 참 자신만만했었다. 사춘기 A to Z를 마스터했으니 둘째와 셋째의 사춘기는 얼마든지 가볍게 넘겨주겠노라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첫째는 첫째고 둘째는 둘째네. 둘째의 고집과 주관을 아기 때부터 온 동네가 다 알았는데, 내가 키우기 제일 힘든 아이였는데 그녀의 사춘기를 만만히 본 내가 하수구나.


하윤아!

엄마는 언니를 키운 게 처음이라 참 서툴렀는데, 생각해보니 둘째를 키운 것도 처음이야. 엄청 잘하는 척, 옳은 척, 맞는 척 하지만 네 마음 하나 이해 못해주는 여전히 서툰 엄마구나. 


언니의 사춘기가 영원할 것 같아서 암담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언니 지금 모습 너도 알지? 너도 이 태풍 같은 시기가 지나면 엄마 절친으로 돌아올 거라는 거  아니까 엄마 잘 기다려볼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데 너의 삶에 대한 노력을 무시해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집에 돌아와서 사과하려 했지만 참 머쓱하다. 그냥 이 글 쓱 들이밀까 싶은 밤이다.





한참 타고 있는 화산 같은 아이에게 다가가 사과하기가 참 어려웠다.  아이는 여전히 화가 나 있는데 나만 기분이 풀린 상황도 미안했다.  쓴 글을 출력하여 잠긴 아이의 방문 틈 사이로 밀어 넣고는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둘째.


엄마... 죄송해요

밤낮이 바뀌어 밤새 울던 아이를 안고 나도 같이 울던 때가 있었다. 밤을 꼴딱 새우면 내 새끼라도 야속하고 미웠다. 하지만 볼우물 가득 파여 웃던 주면 모든 시름이 날아갔고 미소 하나로 모든 걸 퉁 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에 놀라워했다. 죄송하다는 딸아이의 한 마디에 예전 그 미소의 힘이 생각난 건 왜였을까?


몇 년을 밤을 새우며 애를 키웠을 때도, 양 손목에 깁스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도, 터울 없는 세 아이를 태우고 안고 업고 다녔을 때도 그저 미소 하나로 퉁 쳤으면서 이제는 아이의 미운 말 한마디에 참을성을 잃어버린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도 친정엄마를 호출했으면서 겨우 열네 살 아이의 마음 하나 몰라준다. 


훈육과 협박을 헷갈리지 말아야지. 씩씩하게 자라서 무엇이든 될 아이에게 걱정이란 이름으로 충고하지 말아야지. 꽃으로 필 씨앗을 지켜보며 기다려줘야지. 나는 아직 지치면 안 된다. 셋째의 사춘기도 남아있으니;;  박광수 만화가의 좋아하는 문구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아이한테 하는 말이 아닌 조급해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씨앗, 너무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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