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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원 Feb 20. 2024

파리 속의 파리: 빠사쥬

3. 빠사쥬의 형성과 분류

이왕 빠사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바에, 이번에는 좀 길지만 빠자슈의 역사, 형성과정 그리고 매력에 대해서 쪼금 길게 써보겠다. 


파리의 빠사쥬들의 매력은 현재 우리가 방문하고 알고 있는 화려한 건축과 디자인과 그리고 명품과 수제가 늘어선 상점들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는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혹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 등에서 주목한 빠사쥬는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회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문학에서는 이미 이전에 발자크(Honor de Balzac), 에밀 졸라(Emile Zola)의 소설에서 당시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남프랑스 출신인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소설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파리라는 대도시에서 가장 경이로워하는 공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빠사쥬는 근대로 넘어가는 통로로서 도시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화예술, 사회, 정치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사상이 통과하는 파리의 통로로도 볼 수 있다.

갤러리 마들렌 빠사쥬의 입구: 사진 김규원

- 빠사쥬의 역사

빠사쥬의 건설을 보면 18세기 말 즉 대혁명 이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시기에 집중되어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파리 꼬뮨 이후 1830년 혁명으로 즉위한 오를레앙공 루이 필립 1세의 왕정복고시기를 기점으로 한 이후 20년 동안 그러니까 1830년에서 1850년 사이에 대부분 만들어졌다. 또한 1786년에서 1860년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50여 군데의 빠사쥬가 파리에 조성되었다고도 한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는 근대로 향하는 통로였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과거 왕정이 무너지는 대혁명 이후에서부터 시민이 일어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1830년 꼬뮨과 7월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시기 그리고 그 후 레미제라블의 1848년 7월 혁명을 거치는 시기이다. 유럽의 동쪽에서는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이 나타나고 온갖 혼란이 겹치던(1867) 시기였다. 사상적으로는 샤를 푸리에 (1772∼1837), 로버트 오웬 (1771∼1858) 등의 사상이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서 영국에서 시작된 1838∼1848년 차티즘 운동이 휘몰아쳤고, 나아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발표되며 변화가 유럽을 떠돌던 시기였으며 산업혁명으로 기술발전과 삶의 변화가 몇 천 년 인류의 삶을 후다닥 바꾸는 때였다. 특히 이 시기의 프랑스는 세상의 주역으로 선두를 달리던 시기였다.

'19세기 프랑스는 때로 난폭한 격동의 장소였지만, 다른 세계에는 더없이 고마운 곳이었다. 인권과 10진제 통화, 상형문자에 대한 지식, 사진, 영화, 자유의 여신상, 저온살균우유 등 1789년 대혁명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는 세상에 끝없이 많은 보물들을 베풀었다. 화가와 작곡가들은 우리가 여전히 감탄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고, 작가들은 시와 소설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아직까지도 지배하는 중이다.'(데이비드 벨로스, 「세기의 소설 레미제라블」, 메멘토 (2017), p10)

더욱이 프랑스의 중심 파리에서 사회의 진화는 광장과 카페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능이 합쳐진 빠사쥬를 공론과 토론의 장소로 만들었고 문화예술의 변화는 빠사쥬를 창조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기술의 진보는 빠사쥬를 과거의 영광과 새로운 기술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로 만들게 했다. 

'산업에 의한 사치가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품인 이들 아케이드는 몇 개의 건물을 이어 만들어진 통로로 벽은 지붕으로 덮여 있으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소유주들이 이러한 투기를 위해 힘을 합쳤던 것이다. 천장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통로 양측에는 극히 우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리하여 이러한 아케이드는 하나의 도시, 아니 축소된 하나의 세계이다. 안에서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필요한 건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아케이드들은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피신처를 제공해주며, 좁기는 하지만 안전한 산책길을 제공해준다. 물론, 이때는 판매하는 측도 나름대로 이익을 얻는다.'  (발터 벤야민, 「부르주아의 꿈, 아케이드 프로젝트 5」, 조형준 역, 새물결 출판사 (2008), pp353-354)     

사진 김규원

이렇듯 빠사쥬가 생기게 된 배경을 자료나 문헌을 통해 알아보면, 처음에는 대혁명 이후 왕족이나 종교기관이 보유한 건물들을 없애거나 리모델링하면서 생긴 건축물 내의 통로나 곁다리로 생긴 길 들에서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빠사쥬 '카이로'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선 당시에 수도원이 폐쇄되고 허물어지다 보니 성당 내부의 회랑이 그대로 빠사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다 보니 널찍한 대로보다는 어쩌다 생긴 듯한 좁은 통로나 샛길의 형태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큰 건물이 사라지면서 원래 건물의 정문과 후문 사이에 들어선 경우도 있다.  

빠자쥬 까이르의 입구 : 사진 김규원

18세기 말을 상상해보면 도시 내에 하수구 혹은 보행도로가 별도로 구별되어 있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마차나 말 탄 사람들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길바닥이 오물이나 비 온 뒤 진창투성이인 도시에서 잠시 피할 수 있는 천정과 안전한 보행이 가능한 요소는 시민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강점을 적극 활용하여 초기에는 빠사쥬에서 주상복합에 포함된 소극적 상업 행위가 자리 잡다가 나중에는 점점 화려해져서 명품샵, 패션 중심지, 자그마한 공연 행위, 도박, 카페 등 더 나아가서 매춘마저 자리 잡은 도시 안의 시민들의 욕구를 모조리 충족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겉모양의 화려함이 더해지는데 새로이 도입된 유리, 철물, 가스조명 등의 현대적 요소와 시민들이 내심 부러워하던 왕족이나 귀족의 삶을 상징하는 15세기의 화려한 루아르 지방의 성이나 건축물의 고전적 형식이 베껴진, 짬뽕이지만 욕망을 모두 만족시키는 환상의 공간이 된다. 특히 유리의 경우 18세기 말에 도입되었는데 이를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갤러리의 형태를 만들게 되면서 상업 행위에의 도움뿐만 아니라 햇살이 비치는 궁정의 회랑을 연상하게 하는 격조도 더해갔다. 이러니 모파상(Guy de Maupassant),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fils)는 에펠탑의 건설은 비판했지만 빠사쥬에는 참새가 방앗간 가듯이 드나들고, 실제로 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한편 난방이 가능하게 된 기술적 진보로 인해 파리의 아케이드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주상복합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러한 특징에서 더 많은 스토리가 섞이고 녹아들게 된다. 이미 에밀 졸라 등의 소설에 나오듯이 빠사쥬는 파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터널에 자리 잡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라진 오페라 빠사쥬는 주상복합에서 더 나아가 내부에 세탁소, 식당, 숙박업소, 구둣방, 식료품점이 모두 모여 있어서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 안에서 충분히 생활과 생존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하니 현대의 거대한 주상복합 아니 어쩌면 한 도시라고 할 수도 있다. 

빠자쥬의 통로와 구조들: 사진 김규원

빠사쥬(쿠벡트)들은 때때로 갤러리(Galerie)로 불리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비비엔느(Vivienne 1826년 조성), 콜베르(Colbert 1826년), 베로도다(Vero-dodat 1828년) 그리고 파노라마 (Panoramas 1800)를 들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이 지어진 시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전근대시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통로였는데, 대혁명시대의 수학, 화학, 물리학의 발전과 산업혁명 (1760∼1850) 등을 통해 철, 유리, 증기기관 나아가 건축물의 혁명이 이루어진 시기다. 영국에서는 1825년 철도가 선보였고, 파리에서는 1889년 에펠 탑, 1900년 지하철이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유리를 이용한 태양광, 가스등을 통한 야간 활동, 철주물의 사용을 통한 다양한 인테리어와 아르누보 양식의 확산 등을 빠사쥬의 퓨전스타일로 자리 잡게 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빠사쥬 중의 하나인 갤러리 파노라마는 1807년 당시 파리에서 가스등이 조성된 최초의 공간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빠자쥬의 유리천정: 사진 김규원

도시 차원의 계획, 개발과 새로운 변화도 빠사쥬의 흥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스만 남작 (Baron Georges-Eugène Haussmann)이 파리 시장이 되어 파리를 근대도시로 바꾸고자 오랜 거리들을 정비한 시기가 1853년에서 1870년인데, 재미있게도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생겨난 빠사쥬들이 많이 사라지고(물론 더 확장된 경우도 있지만) 과도기의 통로(빠사쥬)는 새로운 시대의 유물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일도 발생한다. 

1838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며 부르주아지의 테마파크인 르 봉막셰(Le Bon Marche)는 빠사쥬들이 자리 잡고 있는 파리 우안(Rive-Droit)이 아닌 좌안(Rive-Gauche)에 들어서게 됐는데 처음에는 경쟁이 없이 이곳과 빠사쥬들이 한동안 공존했지만, 오스만의 도시계획으로 새로 바뀐 우안에 라파예트 백화점(1895) 등이 들어서면서 부르주아지의 욕망의 새로운 거대한 출구가 생기며 빠사쥬는 퇴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한편 역시 오스만에 의해 새로 정비(1852년)된 상업아케이드 거리의 대표주자인 리볼리가 등도 빠사쥬와 바로 인근에서 경쟁하게 된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껭』에서는 이렇게 빠사쥬가 퇴락하던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회랑 왼편에는 침침하고 낮고 다 쪼그라진 가게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새어 나오는 그곳에는 헌책방, 장난감 가게, 지물상들이 있다. 그들이 늘어놓고 있는 진열품들은 부연 먼지를 품고 그늘 속에서 멍청히 잠들어 있다. 작은 창유리들이 반사하는 야릇한 초록빛은 상품들 위에 어른거린다. 그 너머, 진열장 뒤 아주 어두운 상점들은 음침한 구멍들 같다. 그 속에서 이상야릇한 형태의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박이문 역, 문학동네 (2003). pp15-16) 

특히 발터 벤야민은 생전에 완성되지 못한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라는 저술 작업에서 (사실상 책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였다.) 이 퇴락하는 시기의 빠사쥬에서 근대의 과도기, 부르주아의 욕망의 끝을 묘사하고 성찰을 시도하였다. 몇 가지 인용을 하면 다음과 같다.     

'최신 유행의 파리를 위해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고 있던 반면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들 중의 하나는 사라져버렸다. 즉 빠사쥬 드 오페라가 새로 개통된 블로바르 오스만에 삼켜지고만 것이다. 이 감탄할 만한 포장도로가 이전 세대를 위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아직 몇몇 아케이드는 휘황찬란한 불빛과 그늘진 구석 속에서 공간이 되어버린 과거를 보존하고 있다. 이들의 내부 공간에서는 시대에 뒤진 업종들이 장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진열되고 있는 상품은 알아보기 힘들거나 또는 다의적이다. 이미 입구(출구하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보기 드물게 집과 거리가 뒤섞여 있는 형태에서는 모든 문은 입구인 동시에 출구이기 때문이다.) 에 쓰여 있는 명패와 간판들에는, 그리고 이미 안쪽 벽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는 명패들에는 뭔가 수수께끼 같은 것이 들어 있다.' 

'고객들이 떠나갔으며, 이 아케이드에 매료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가와도 우비나 고무를 입힌 망토가 없는 가난한 고객들이나 불러들일 뿐이다. 이것은 기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으며, 눈이 오는 휴일에도 스키를 타러 나가기보다 오히려 온실에서 몸을 따뜻하게 할 궁리나 하던 세대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시대에 너무 앞선 유리와 너무 이른 철. 이것들은 동일한 직계 후손들이었다.'      

그것들은 제정시대의 파리에서는 동굴로서 빛을 발했다. 1871년 빠사쥬 데 파노라마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 한쪽에서는 가스등의 세이렌들이 노래를 부르고, 반대쪽에서는 기름을 살라먹고 타오르는 불꽃의 오달리스크들이 유혹의 눈길을 보내왔다.' (발터 벤야민, 「부르주아의 꿈, 아케이드 프로젝트 5」, 조형준 역, 새물결 출판사 (2008))

빠자쥬 내부 상가의 모습: 사진 김규원

이후, 빠사쥬의 퇴락이 19세기 말에 시작되면서 점점 그곳은 도시에서 잊힌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음침한 터널로 남아 있게 된다. 과거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나마 남은 몇 군데는 그나마 다행이고 없어진 빠사쥬도 2/3정도이었다. 그러다가 빠샤쥬가 새롭게 부각되고 리모델링 되며 다시금 파리의 보석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0년에야 가능했는데 대표적인 빠사쥬인 비비엔느, 파노라마, 주프루아 갤러리의 부활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파리의 은밀하게 아름다운 보석으로 새롭게 조명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날씨가 궂은 날 벨에포크의 파리를 느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서 파리지앙과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패션주자 장폴 고티에 (Jean Paul Gaultier)나 겐조(Takada Kenzo) 등의 샐럽이 20세기 후반 빠사쥬에 본점을 개장하고 과거의 레스토랑, 고서점 등이 새로이 개점하고, 벨에포크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등장하며 빠사쥬는 재활의 동력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관광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산업이 확장되면서 파리만의 은밀함과 화려함의 중심인 빠사쥬가 새롭게 드러나고 프랑스 정부도 문화부 주요 기관들을 빠사쥬를 리모델링하면서 입주시키는 등,  파리와 프랑스 국가 차원에서도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 부활한 현대의 빠사쥬이다.    

  

빠사쥬의 내부와 외부의 연결: 사진 김규원

다음호 부터는 파리의 빠사쥬 하나하나를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파리의 오래된 보물을 하나씩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 참고 문헌

‧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박이문 역, 문학동네 (2003)

‧ 발터 벤야민, 「부르주아의 꿈, 아케이드 프로젝트 5」,  조형준 역, 새물결 출판사 (2008) 

‧ Moncan, Patrice de, ed., (2012). Proménades Litteraires Les Passages Couverts de Paris, Paris: Ed. de Mecène 

‧ Guy Lambert, ed,, (2002). Paris et ses passages couverts, Paris: Ed. du Patrimoine Centre des mounments nationau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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