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이 내게 남긴 선물
2년 전 자격증 수업에서 만났던 한 제자가 그때 공부했던 교재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2017년 교사생활 1년 차에, 수업 교재를 직접 만들 생각조차 못했던 병아리 같았던 시절, 처음 자격증 수업을 시작하면서 기출문제별로 중요한 내용을 손으로 필기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자료들이었다. 중요한 내용을 필기해 외우게 시키고, 화이트로 빈칸 뚫어서 매 수업시간마다 시험 보고, 많이 틀리면 집에 못 가게 가방끈 잡고 남겨서 같이 간식 먹고 놀다 또 시험 보던 그 시절..
'맨 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선생님이라는 말보단 언니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스물여섯의 교사와 너무나 순수하고 위풍당당하고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던 학생들. 혼자 꽃 핀 교정을 거닐 때면 내가 이들의 인생에 한 번뿐인 학창 시절을 함께할 수 있음에 벅차오르곤 했었던 그 시절. 방과 후에 수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얼굴을 스쳐 지나가던 시원한 바람. 손에 들려있던 명랑 핫도그.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몰라 내 눈치를 보면서도 신나게 수다를 떨던 특별실.. 그러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쉬는 시간이 멀다 하고 붐볐던 제1교무실 연구부.
또 다른 꿈을 찾아 영국으로 떠나와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은, 땀 흘리며 열심히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을 증명하는 트로피처럼 빛바랜 교재가 내 책장에 조용히 꽂혀있고, 손과 발로 뛰던 그 모습보단 어쩌면 컴퓨터와 모니터 스크린 속의 내 모습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자가 오랜만에 보내준 사진들 덕분에 나는 생각해본다.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라는 말과는 저 멀리 동떨어져 있었던, 늦은 저녁시간 높게 솟은 롯데타워와 작은 불빛들만 함께였던, 한산한 운동장이 허전하게 느껴졌던, 하교시간 이후에도 긴 시간을 수업에 쏟아냈던 그때의 삶, 노력, 웃음 그리고 몰입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가장 큰 원동력이자 가치의 원천임을.
냉정하지 못했으나 정으로 충만했던 그 날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화가 나서 울었던, 지식의 양보단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내 제자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더 큰 연봉을 받는 것보단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그 자체로 축복받았음을 알며 독립적이고 살아있는 삶을 살기를 그토록 열망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땀으로 남아,
집에 돌아오는 2층 버스에 앉아 내가 했던 필기를 한 글자씩 꼭꼭 씹어보며 나는 다시 한번 소망한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교단에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