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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로소 연 Dec 30. 2022

일단, 울고 시작할게요.

K고딩 수학이야기-1

샤워하러 들어가면 하세월~

"왜 이렇게 오래 씻어~ 빨리빨리 하고 나와!"

대답이 없어서 문을 살짝 열어봤더니 울고 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왜 울어? 어디 아픈 거야? 무슨 일 있어?"

"......  ……......"

일단, 아픈 건 아닌가 보다.


"무슨 일 인지 얘기해 봐~ 무슨 속상한 일 있었어?"

"수학 학원 안 가고 싶어. 수업시간에 나만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선생님 설명도 빠르고... 학원에 있는 시간이 그냥 낭비 같아."


몸에서 기운이 스르륵 빠져나가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다. 

"힘들면 그만 다니자.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머리는 복잡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상처 많이 받았나?

수학샘과 상담을 다시 해봐야 하나?

수학 학원을 새로 알아봐야 하나?

이대로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학원 싫다는 말은 처음인데… 그렇게 힘들었나?

괜히 학원을 옮겼나?

상한 마음은 어떻게 달래주지?





중학교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문제를 풀었다던 S.

그 길로 (수소문하며 학원을 찾아봤댔자 내 정보력이 얼마나 됐으랴마는…) 소수정예 학원을 갔는데 문제 풀이 양을 늘려서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사춘기의 K중딩이던 S가 속도가 빨라질 만큼 문제 푸는 양을 늘렸을 리가 있나!

그보다도 문제를 푸는데 이상한 똥고집을 발휘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게 푸는 것을 목격했다.

시간 안에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시험에서 창의력을 시연하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풀이 과정에 문제가 있는 S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과외로 1년쯤 공부를 하면서 쓸데없이 길게 풀이하던 것을 좀 고치는 듯했다.

하지만 중2-2학기 기말고사에서 생전처음 보는 점수를 받고 S도 나도 놀랐다. 수포자가 대량 생산되는 때가 중2-2학기라더니 S도 이대로 수포자가 되는 건가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예비중 3 겨울방학에 우연히 친구 소개로 대치동 수학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점수는 모자라지만 기본 개념은 아는 것 같고 태도가 괜찮아 보이는 덕분에 맨 아랫반에서 보충수업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의 대부분을 수학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중3 시험에서는 계속 100점을 받았다.

이걸로 수학공부는 안심해도 되는 줄 알았다.






"공부 꼭 잘하지 않아도 돼.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보고 

안되면 잘할 수 있는 다른 거 찾으면 돼. 

세상 사람들이 다 수학을 잘할 필요는 없어. 

학원에서 못 알아듣는 수업 하느니 그 시간에 다른 거 하자."



이런 말로 마음이 달래졌을까?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현실은 이미 앞서 달려가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보이고, 그들과 같이 경쟁을 하려니 자신이 너무 작아지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보내다가 한 달도 안 되어 봇물이 터지듯 눈물이 토해졌다.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말들은 불안을 불러오는 말뿐이다. 

선행하고 온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대치동에서 중학교 다니다가 내신 잘 받으려고 넘어온 애들도 꽤 된다. 

중간 기말고사는 등급을 나눠야 해서 엄청 어렵게 나온다. 

수행평가도 챙겨야 하는데 엄청 빡세다. 

웬만큼 공부해서는 인서울은 커녕 그냥 실패라고 겁주는 말들이었다.


새 학년에 올라가 새로 시작하는 용기에서 오는 긴장감이 아니라 불안의 긴장감이다.

나만 못하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함.

이미 시작된 레이스에 나만 늦게 출발한 것 같은 막막함.

그 레이스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더 힘차게 달릴 용기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


하… 그노무 대학이 뭐라고!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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