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고딩으로 살아가기
오늘도 날씨가 좋다.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날이면 집 안에 있기 싫어서 온 맘으로 발버둥을 친다.
그냥 보내기 아까운 이 날씨를 같이 누려줄 사람 없나 머릿속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주말이라 다들 가족과 있을 터라 괜한 연락이 민폐지 싶어 핸드폰만 뒤적이다 만다.
남편은 업무상 골프 약속이 있고 딸은 스터디 카페에 가고, 주말이라 만날 사람도 없이
맑고 청명한 하늘을 속절없이 보내고 있자니 조바심이 난다.
스페셜한 이 날씨에 아무 일정도 없이 낭비했다고 경고하듯이 하늘이 붉게 물들 때
조바심은 깊은 우울로 바뀐다.
정해진 코스처럼.
그러다가 이런 날씨에도 공부한다고 스터디 카페로 들어간 딸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놀고 싶은 마음 드러내지도 못하고 공부하러 간 K고딩.
쯧쯧.
주말에도 대치동은 학생들로 북새통이다.
학원 구간의 신호등 사방에는 검정색 상하의를 입은 비슷비슷한 학생들 무리가 초록 불을 기다린다.
도로는 요일 상관없이 학원 등하원 시간에 맞춰 정체가 반복된다.
학원 시간에 걸리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네비가 25-30분으로 안내한다.
경력자만 알 수 있는 잘 빠지는 차선으로 옮겨가며 20분 안에 완주하고나니
처음 대치동에 왔을 때가 생각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나의 립스틱으로 돌려 바른 듯 다 똑같은 입술 색깔에 어색한 중딩 화장이 싫어서,
만난지 백일을 기념할 만큼 가벼운 중딩 연애는 더 싫어서,
무작정 화장금지 여중을 보내야겠다는 신념으로 이사를 온 곳이
대치동 옆 동네 송파다.
전국에서 교복 치마 길이가 제일 길고
교칙 또한 가장 긴
여자중학교로 입학하게 해달라 기도하며 전학 입학을 시켰다.
내 평생 기도를 제일 열심히 하지 않았나 싶을 만큼 기도하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중학교를 전학 입학시킨 다른 엄마들과 난 기본 신념이 달랐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2병 걸린 아이들 때문이라는 지루한 농담처럼
중학생의 사춘기는 무서운 불치병이자 통과의례다.
하지만 내 아이만큼은 살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한 발 더 나아가
사춘기 걱정거리의 싹들이 자라지 못할 환경을 찾았을 뿐이다.
입학식 날 이른 아침,
교육청에서 만난 전학 입학 동기는
강북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전세를 3년으로 계약했단다.
중학교 3년 동안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의 인프라를 이용하며 지내다가
기숙하는 전국단위 자사고에 입학하고 다시 되돌아 갈 계획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학 입학을 하게 된 이유 중에
대치동 학원가와 가까운 이유는 10% 아니 5% 나 될까?
그 당시에는
입시를 위해 이미 준비하고 달려온 아이들과 같은 트렉에 올라 탄지도 모른 채
역시 중학교는 여중이고,
화장은 금지시켜야 마땅하다고,
학교 분위기 정말 좋다며
전학 입학한 스토리를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이렇게 불시착한 대치동 옆 동네에서
자부심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코로나를 맞이하며 고립된 2학년을 보내고
예비고1이 되어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3 여름이 되면 더이상 중학생이 아닌 ‘예비고1’ 로 불린다.
코로나가 조금씩 풀리면서 예비고1 을 위한 각종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설명회를 들을수록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마음의 목소리는 매일 밤 나에게 비수를 꽂았다.
그동안 뭐 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