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고딩의 만우절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우며 작전을 짠다.
과목별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장난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여 주실지 가늠하면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조회가 끝나고 나면 재빨리 옷을 돌려 입고 뒤돌아 앉는다.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된 많은 제약들이 있어서 코로나 방역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인지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실을 바꾸는 것은 혹여 말이 나와서 단체로 혼이 날 수 있으므로 패스!
각자 교실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실 팻말을 바꾸면 된다.
1-12반은 과학실로, 1-11반은 화장실로, 1-10반은 2-10반으로, 1-5반은 음악실로...
물론 대부분 익숙해져서 위치로 알고 계시지만 혹여라도 걸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바꾼다.
새로 오신 선생님은 당황하셔서 팻말과 반의 위치를 확인하고 빈 교실에 들어와 어리둥절하신다.
반 아이들이 전체다 교실 밖 정원에 나가서 창문으로 교실이 보이는 곳에 잘 숨어 선생님의 행동을 지켜본다.
빈 교실 칠판에는 모두 자퇴한다는 의사가 빼곡히 적혀있다.
<자퇴사유>
국어샘이 너무 귀여워서
지구를 구하러 감
맞춤법이 핵갈려서
남친 찾으러 감
농민봉기 일으키러 감
가방과 무릎담요로 몸을 만들고 교복과 체육복을 입혀서 책상에 엎드려 놓는다.
"선생님 쟤 깨워도 안 일어나요~"
선생님은 속는 척하시기도 하고, 그 와중에 진짜로 속은 선생님도 계시다.
교복 입혀놓은 마네킹을 교실까지 데리고 와서 교탁 앞에 세워두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교탁 밑에 숨어 있던 학생이 마네킹을 쓱 돌려서 인사를 한다.
하루종일 깔깔거리고 재밌었을 고딩들을 생각하니 짠하면서 마음에 안도가 된다.
이런 재미가 있어야 또 힘든 공부 해나가지 싶다.
매번 수행평가와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빼곡히 적힌 일정 속에 진행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스트레스 풀리게 웃고 떠들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고등학교 만우절과는 너무 다르게 진화된 놀이들은 재밌고 부럽다.
아쉽게도 올해는 만우절이 토요일이라 학교에서 재밌는 일을 못 만들었다.
작년과 올해의 느낌이 이렇게 다를까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새내기가 되어서 긴장의 연속에 찾아온 만우절은 학교 안에서의 첫 일탈이었고 잠깐의 숨통이 되었다.
2학년이 되고 나니 새내기와 다른 여유 속에서 끝나지 않는 입시고민으로 학교생활을 한다.
고등학교에서 중심이 되는 학년으로 동아리나 학교 활동에 선배로서 책임과 관록의 여유를 부리며 후배들을 맞이한다.
S는 학교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는 학생회로 일하다 보니 만우절의 아쉬움은 상쇄가 되나 보다.
다른 할 일들이 많아져서 괜찮은 것인지, 미리 핀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한 것인지.
특별히 벚꽃이 피면 교정이 더 예쁜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바쁘다.
미리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반별로 단체 사진을 찍고,
1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다시 모여 사진을 찍고,
동아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선생님과 사진을 찍으며 이 봄을 보내고 있다.
마음 한쪽에는 모의고사 공부와 내신 대비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음표를 가지고
만우절 거짓말 하나 못해보고 스터디 카페로 간다.
중간고사기간에 피어야 할 벚꽃이 미리 피고 모든 봄꽃이 뒤죽박죽 피었다.
이상기온 탓에 함께 핀 목련과 개나리, 벚꽃이 알록달록 아프게도 예쁘다.
뒤죽박죽, 알록달록, 아프게도 예쁜 고등학생이다.
4월의 첫날, 5월 하순의 날씨를 보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