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로소 연 Mar 21. 2023

두 번째 춘분

K고딩으로 살아가기


2022년

춘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온라인 입학을 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방은 무거워졌고,

등교시간은 빨라졌고,

해야 할 공부는 많아졌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 자주 닥쳐오고 있다.


엄마 말 잘 듣는 딸이어서...

그동안 엄마 뜻대로 따라주던 일들이

지금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지금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지난 시간 어느 순간들에 머물러

좀 더 시켜볼걸...

그냥 하게 놔 둘 걸...

그 길로 가 볼 걸...

하면서 괴롭고 아픈 마음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응원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에너지 음료 2캔을 마시며

밤을 꼬박 새워도

친구들과 샘들과의 소통 통로를(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다)

끊어도 스스로의 선택이니...

응원하고 안아줘야지.


오늘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니까

조금 더 활기차게 지내보자.

새싹이 차가운 땅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지금이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후회 없이

한걸음 한걸음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길!

앞으로 밝은 날이 점점 길어질 거야.



1년 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3월의 춘분 날 적은 글이다.




S가 고등학교 1학년 때 SNS 계정 삭제 하기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글





다시 춘분이 돌아오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1년 전의 긴장감과 두려움은 다른 형태의 긴장감과 걱정으로 여전히 입시 레이스 중이다.


그동안 삭제했던 인스타그램을, 2학년이 되면서 다시 깔았다.

학생회 임원이 되어 공식 행사 안내나 홍보를 인스타그램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단, 학생회 임원 명으로 계정을 만들고 게시물은 올리지 않겠다고 한다.

학생회가 되고 나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멈추었던 학교 행사도 다시 시작되어 체육대회, 학교축제 등 큰 행사뿐만 아니라 2학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신입생 접수부터 교과서 배부, 간담회, 임원수련회 등등 학교에서 하는 여러 일들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해야 해서 괜히 하라고 허락했나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신입생 접수받을 때는 6시간을 서서 있었는데 몸은 힘들어도 일은 재미있다는 S다.





며칠 전 밤, 스터디 카페에서 돌아온 S에게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으니 좀 걷자고 꼬셔서 동네 한 바퀴 걸으며 나눈 이야기다.


S: 대학을 꼭 가야 해?  대학 안 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사람도 많잖아.

엄마: 안 가도 돼. 대학 안 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S: 아니, 아직 모르겠어.

엄마: 대학을 가기 전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들은 그걸 열심히 하니까 잘하게 되는 거지.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거야. 학생신분은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일 찾아보는 기간이야.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도전할 수 있도록 기본 지식을 쌓는...


말이 길어진다 싶은지, 더 깊은 질문을 한다.


S: 사람은 왜 사는 거야?

엄마: 태어났으니까 살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어. 그냥 태어나서 생명을 얻었으니까 감사하며 사는 거야. 근데 기왕 사는 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사는 거지. 그러니까 동물이랑 다른 '사람'이잖아.

S: ......

엄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왜 사는지 궁금한 건 지금이 힘들어서 피하고 싶어서 궁금한 거 아닐까? 전에,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얘기해 준 말이 있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가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부터 알려줘야 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가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면 된다고 했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가 진짜 궁금한 것인지, 공부하기가 힘들어서 피하고 싶어서 궁금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

S: 알겠어. 편의점 가서 맛있는 거 사줘.






2023년 춘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오늘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여유 있게 걸어서 학교에 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안쓰러움 옆에 대견함이 피어나고 있다.


S야, 엄마도 고등학생 때 삶이란 무엇인가 궁금했었단다.

그 고민을 하느라 공부를 잘 못했었단다.

삶이 무엇인지는 나이 오십이 되어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일단 공부하면서 찾아보자.

춘분이 되었으니 우리의 낮은 점점 길어질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꼴 보기 싫었다가 안쓰럽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