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만족도는 관심에서부터
이름만으로 설렘을 주는 단어 100개가 있다면, 단연코 10위 안에 들 단어. ‘선물’이다. 나는 선물을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일 때 더 큰 설렘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구실’을 찾는다. 나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어줘서, 기념일이라서, 취업이나 승진 등 축하할 일이 있어서, 그도 아니면 그냥 나에게 좋은 일이 있어서… 온갖 구실을 만들어 선물할 기회를 노린다. 미리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사놓고 선물할 명분이 없어 한참을 기다린 적도 있다. 명분 없는 선물은 자칫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조심스럽다.
선물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
상대방을 생각하며 고르는 선물이지만 은연중에 내 취향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선물을 통해 은근하게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건 선물하기의 또 다른 묘미다. 좋아하는 사람과는 취향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선물이다. 좋아하는 와인을 말로만 추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냅다 한 병 선물해서 같이 좋아하게 만드는,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카카오 선물하기 [랭킹] 탭에 들어가서 1위부터 100위까지 살펴보지만, 결국 고르는 선물은 [랭킹]에 없는 물건이다. 남들 다 주는 선물은 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다. 종종 선물을 받은 사람이 ‘이런 선물은 또 처음이네. 너 답다’라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는데, 나를 드러내면서도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기프티콘은 정 없지
물론 치킨도 커피도 너무 좋아하지만, 바코드를 찍거나 번호를 입력하면 사라지는 기프티콘은 어딘지 정이 없다 느껴진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고민한 시간과 받아보는 즐거움은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도 일회성으로 사라지고 마는 물건은 잘 고르지 않는다. 꾸준히 곁에 두고 쓸 수 있는 물건도 좋고, 사용할 때마다는 아니더라도 가끔 선물 준 사람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물건도 좋다. 화분이나 머그컵, 향수 등이 그렇다.
선물의 만족도는 관심에서부터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머릿속은 온통 선물 받을 사람으로 가득 찬다.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평소 취향은 어떤지부터 선물을 건넬 적당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고민하고 선물을 받았을 때의 반응을 떠올린다. SNS를 슬쩍 훔쳐보는 건 필수코스다.
내가 선물할 물건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큰 낭패다. 갖고 있지 않은 물건 중에서 꼭 필요하거나 취향이 반영된 물건이라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재밌고 짜릿하다.
갖고 싶은 물건을 직접 물어보면 서로에게 편하기야 하겠지만,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 효율로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이거 진짜 필요했는데!”,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등의 반응은 선물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선물을 못 끊는 이유가 바로 이 '상대의 니즈를 정확히 관통했을 때의 쾌감'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선물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는,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맘먹고 고르는 선물도 좋지만, 사소하게 감동을 주는 선물도 좋아한다. 회식 전에 몰래 챙겨주는 숙취해소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가방에 슬쩍 넣어놓는 휴족시간 한 박스, 면접을 앞둔 친구에게 긴장하지 말라며 건네는 우황청심환 같은 것들.
돌려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애초에 그런 걸 염두에 두고 하는 선물이 아니기에.
좋아하는 사람의 선물을 고르는 그 시간이 나에게도 선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