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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y 01. 2024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라디에이터와 기간제 친구

자다가 추워서 눈을 떴다.

공기가 썰렁해 입고 온 패딩을 덮고 그 위에 다시 이불을 덮고 웅크렸다.

벽 한쪽에 달린 라디에이터를 만져보았다.

그럭저럭 따듯하긴 한데 살갑게 몸을 덥혀주진 않는다.

튀르키예의 첫인상은 라디에이터였다.


-


혼자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여권 문제만 해결하면 올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여행을 하고 있으면 늦게라도 합류할 있을지 몰라.

친구 송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뒤로도 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숙소와 항공사에 연락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놓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구가 올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당일 출발하지 못했으니 돌아오는 티켓까지 전부 무용지물이 됐고, 새로 항공권을 구하는 건 무리일 테다. 당연히 긴급여권도 불가.

결국 친구는 여행을 포기했고, 나는 잔뜩 겁먹은 채 이스탄불에 떨어졌다.


같이 여행을 취소했어야 했나, 혼자 온 게 잘한 걸까.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뭘 믿고 왔지?

솔직히 무섭다.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떡해.

송은 뭐하고 있을까? 자기를 버리고 왔다고 서운해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미안하네.

그치만 이미 혼자 와버렸어. 아무것도 못하고 숙소에 찌그러져 있다가 집에 가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

망했다는 비관과 정신 차리자는 결기가 반복재생되면서 카세트테이프처럼 돌고 돌았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동양인이 눈에 띄게 적어졌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만 보여도 내적 친밀감이 정도다. '형제의 나라'라는 세간의 평과는 다르게 터키인들은 무뚝뚝했다. 공항인데도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말소리가 크고 빨라 불퉁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형제는 형제인데 몇 년은 안 보고 산 형제 같았다.

그런데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버스를 찾다가 딱 봐도 한국인인 또래를 봤다. 그녀도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해서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이 한 마디로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에서 아는 사이가 됐다. 서울에 산다는 그녀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간호사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기분전환할 겸 여행을 왔다고 했다. 같이 버스에 오르며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들어서였다. 한편으로는 경계심이 들었지만 딱히 위험한 사람 같지 않았다. 혼자 오게 사정을 밝혔을 선뜻 내일 뭐하냐고 물어봐 것이 마음에 들었고, 밥을 혼자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게 퍽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여행지 식당에서 한 가지 메뉴밖에 못 시킨다는 건 큰 불행이다.)

속전속결로 연락처까지 주고받고, 우리는 다음날 이스탄불 일일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는 기간제 친구인 셈이었다.



-


"자, 이 팀은 어디서 오셨어요~?"


발랄한 투어 가이드가 마이크를 건네줬다. 이스탄불 한인 투어로 모인 이십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가 있었고 우리는 맨 마지막이었다. 내가 만난 그녀 A, 그녀의 아는 오빠 B, 그리고 나.

그녀는 나를 어쩌다 알게 된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아는 오빠 B는 예전에 친했었는데 이번에 우연히 일정이 겹쳐 함께 왔다고 했다. 가이드는 기계적으로 호응한 뒤 따발총처럼 설명을 쏟아냈다. 우리는 임박한 프로젝트를 위해 급조된 팀이었다.


A는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잔돈을 내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나는 투어하는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는데 그녀는 관광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B와 이야기하느라 점점 뒤처졌고, 오랜만에 만났다는 게 사실인지 둘만 아는 이야기로 근황을 나누느라 바빴다. 남의 데이트에 눈치 없이 낀 기분이었다. 유적지를 둘러보며 오손도손 감상을 나누거나 웃으며 함께 사진을 남기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실컷 망설이다가 뒤로 빠지는 그녀의 성격도 나를 괴롭게 했다. 상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통역을 부탁한 뒤(그녀는 영어에 약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식당에서도 메뉴를 고르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이 주문하는 걸 살피느라 결정이 늦어졌는데 그마저도 자꾸 바뀌어서 힘들었다. 어렵게 결정하고 나서 그녀는 주문처럼 "이게 제일 낫겠지? 잘 고른 걸 거야."하고 말했다.   

나는 A에게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안전한 선택만 하려는 나, 그래서 자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선뜻 용기 내지 못하는 나를 봤다. 점점 그녀가 불편해지는 건 일종의 동족혐오인지도 몰랐다. 


내가 이 팀에서 탈퇴하기로 결심한 건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A, B와 시내 중심지를 한바퀴 돌고 나서였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서 현금으로 투어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투어 시작 전에 계산을 마쳐야 하지만 갑자기 합류한 우리를 배려해 가이드가 시간을 더 주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오후 관광 전까지 ATM에 들러 현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기 때문에 나는 틈틈이 돈을 뽑아 놓았다. 도보투어여서 걸으며 ATM을 여러 번 마주쳤지만 A는 수수료를 덜 내는 곳을 알고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가 결국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나와 B가 먼저 와서 가이드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동안 ATM에 갔던 A가 화를 내며 돌아왔다.


"그러니까 현금으로 받지 말아야죠! 빨리 도와주세요."


그녀가 쏘아붙이자 가이드는 뺨 맞은 표정이 되었다.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와 B가 남은 지폐를 세는 동안 A와 함께 ATM에 갔던 현지인 가이드가 씹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투덜대는 A 옆에 붙어 인출하는 걸 도와줬는데 자기를 속이고 돈을 슬쩍한 거 아니냐며 현지인 가이드를 의심했다는 것이다. A가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뽑아온 돈과 나와 B의 여윳돈을 합해 투어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나는 이미 A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투어가 끝나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모스크와 트램이 있는 이국의 풍경은 꽤 낭만적이어서 나는 걷다가 멈춰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이런 풍경을 보며 옆에 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나도 좀 별로라고 느껴졌다. 낮에 있었던 한바탕의 해프닝을 얼버무려놓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곰곰 씨 내일은 뭐해? 언제까지 이스탄불에 있을 거라고 했지? 밤에 B랑 맥주 한 잔 할까 하는데 같이 갈래?"

"저는 피곤해서 오늘은 이만 들어가려구요."


저녁을 먹으며 A가 물어왔지만 거절했다. 밤까지 같이 있고 싶지는 않다. 괴로운 것보단 외로운 게 낫지.

다음날 먹을 아침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부터는 기꺼이 혼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운명적으로 친해졌을지도 모르는 인연인데 미적지근하게 끝나버렸다.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아쉬울 먼저 다가가 살뜰하게 굴었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A의 싫은 점을 세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한다, 우유부단하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그녀를 무시하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드는 점만 자꾸 보이는 건 튀르키예도 비슷했다. 낯섦이 뜨겁게 와닿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예상가능해서 편안하고 정감 가는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미적지근했다, 라디에이터처럼.


나는 정말 까다로운 인간이구나. 모든 관계가 원하는 온도로 맞춰지기를 바라는.

여행도 사람도 저마다의 온도가 있겠지. 나는 어떤 따뜻함을 원하는지, 어디에서 차가워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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