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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y 27. 2024

엄마 나 이사람이랑 결혼해야겠어

결혼 3개월 전

누군가 왜 지금의 남친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냐고 묻는다면 눈동자를 몇 번 굴리지 않고도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꼽을 텐데, 그게 너무 추상적이라 느낀다면 구체적인 예시도 너무나 가능하다.


첫째는 나의 고양이 조조다.

반려견은 익숙하지만 반려묘는 처음이라는 남자친구는, 고양이와 처음 만났을 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무서워하거나 얕보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조심, 조심. 동물과 교감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말이 나에게 그저 보여주기 위한 말은 아니라는 것도 조조를 대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며 알게 됐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나 자신의 변화만큼이나 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고양이에게 우호적이면 좋은 사람,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판별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은 내가 얼마나 인복이 많은 사람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나에게 반려묘가 생긴 걸 축하해 주며 출산선물 못지않게 많은 간식과 장난감을 사진 사람들, 고양이로 인해 변할 내 모습을 기대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기대대로 내 SNS에는 고양이 사진을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나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남자친구는 평생 함께 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남자친구는 아토피 질환이 있었고, 조조 덕분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걱정하는 나의 말을 뒤로하고 그는 말했다.

"뭐가 걱정이야?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 아토피는 원래 나한테 있었던 질환이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어"

"하지만 알레르기는 되게 괴롭다고 하던데.."

"심하면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 돼"

"그래도.."

"가족을 선택할 수 있어? 조조는 너의 가족이야. 그러니 미래에 우리가 함께 한다면 조조는 선택 사항이 아닌 거지"

더 이상 그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 남자친구가 조조를 미래 언젠가 선택해야 할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면, 나는 우리 관계를, 우리의 미래를 훨씬 더 많이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겐 미안하지만, 이내 이별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나의 잠자리다.

이상하게 남자친구의 집에서 주말을 함께 보낼 때면 난 유난히 긴 낮잠을 자게 됐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누가 혼내기라도 하는 듯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인데, 나는 밥만 먹고 나면 식곤증 때문에 스르륵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그는 깨어 있고, 나는 비몽사몽 하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엄마처럼 내 잠자리를 꼭 정리해 주었다. 때로는 그 손길이 엄마보다 더 섬세해 잠이 깰 정도였다. 꼭 뭔가를 안고 자야 하는 내 품에 여분의 베개 하나를 안겼고, 다리를 올려 놓을 수 있게 다른 베개를 받쳐주었다.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나는 그때, 행여 그가 나에게 실수를 하거나 서운한 일을 저지르더라도, 이 순간을 기억하며 감정을 달래야겠다 다짐했다.


기나 긴 연애를 끝내고 일기장 어딘가에 다음 사람에 대한 바람을 적은 적이 있다. 엄마 같은 사람. 말다툼도 하고 짜증도 내지만 그 밑바탕엔 나에 대한 애정으로 범벅이라 어떤 갈등이 와도 절대 끊어질 수 없는 사람. 나는 내 잠자리를 챙겨주는 남자친구에게서 엄마 같은 자상함과 애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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