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Jun 17. 2024

역시나, 혹시나

혹시나 하는 시행착오, 역시나 하는 프레임

저는 확실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은 "혹시 모르니까.."입니다.

혹시 몰라서 애프터까지 굳이 갈 필요 없는 소개팅 남을 굳이 한번 더 만나고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혹시 몰라서 파우치에는 별의별 물건을 가지고 다닙니다. 도대체 그 안에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뚱뚱하고 무거운지 물어보는 사람들 꽤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람의 유형을 '혹시나' 타입과 '역시나' 타입을 나눈다면,
정확히 '혹시나'형에 속하는 사람이죠. 

얼마 전 20년 지기와 얘기를 나누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가 나왔습니다.

퇴사하고,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현재 어느 관공서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요,
오랜만에 새로운 환경에서, 나이대가 다른 사람들과 일하려니 적응하는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유난스럽고, 인정해주지 않아서 문제였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환경이 아닌 오롯이 자신이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말이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 만나면서 쌓인 데이터라는 게 있잖아. 그래서 난 조금만 낌새가 보여도 금방 벽을 쳐버려. 내 주변에 오지 못하게 미리 막는 거지. 그러면 어김없이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싶거든. 그런데 내가 그런 점에서 너무 사람을 가리면서 만나는 게 아닌가 싶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져"

반면에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첫인상이 별로여도, 다시 한번 만나자고 하면 응하는 편이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상대에게 있는데, 내가 못 알아차렸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죠. 하지만 대부분은 역시 나로 끝나버렸습니다.

이 나이쯤 되면 나의 데이터를 믿을만한데 저는 그렇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는 나와 달리 되레 너무 자신의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만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프레임을 씌우게 돼 좋은 기회를 잃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혹시나 형의 인간인 저는 그런 마음으로 시간과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역시나 유형인 친구는 본인만의 틀에 맞춰 사람들을 보느라 어쩌면 괜찮은 사람을 놓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 심리소장이  <나는 솔로> 출연진 중 누군가를 분석했던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데요,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남자 출연자들의 관심을 받던 여자 출연자 H는 신기하게도 유일하게 자신을 택하지 않은 그 한 명의 남자에게 꽂혀 있었습니다.

정작 그 한 명의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 많은 남자보다 그 한 명의 마음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H를 보다 못한 한 출연자가 답답한 듯 충고합니다. 

<나는솔로>10기 현숙 유튜브 캡처 화면 

<나는솔로> 10기 유튜브 캡처 화면 ㅁ

당신을 보는 많은 남자들이 있어, 당신을 보지 않는 그 남자에게 굳이, 왜? 너무 미련한 행동이야.

심지가 곧은 H는 이래나 저래나 해도 결국 자기가 마음에 품고 있던 남자를 포기하지 않고 이윽고 최종 커플이 됩니다.
방송 후에도 꽤 오래 연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누군가는 수치와 확률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H와 같은 선택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4의 확률이 있는데 1/4을 택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수치상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H에게는 비합리적인 선택일지라도 내 감정이 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줍니다. 그게 다른 선택지 보다 성공 확률이 훅 떨어지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성공률로 따지자면 분명 3/4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안전할 테지만, 후회의 관점에서는 무엇이 맞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H는 효율성과 확률을 따지는 사람들의 선택보다 후회는 덜할 것이라고 그 유튜버는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그런 이유로 늘 미련한 행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똥이 된장인지 아닌지 '굳이' 찍어 보는 이유는 그걸 찍어 보지도 않고 똥이라 단정 지었을 때 하는 후회가 찍어보지 않았을 때보다 더 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나 해서 역시나였나요,

역시 나는 역시나였나요.

혹은 역시나, 가 아니었나요?

작가의 이전글 아무리 소중한 꿈 이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