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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Jun 04. 2024

아무리 소중한 꿈 이래도

당신의 영혼보다 소중할 순 없어요

나는 사실, 사람들이 꽤 동경하는 직업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 전에는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방송 계통의 일을 지원했던 적도 있다. 이건 나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직업을 꿈으로 갖는 것이 힘든 여느 친구들에 비해 나에겐 꽤 쉬운 선택지였다. 어른들이  늘 묻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했고, 그게 맞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꿈을 가진, 주관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취해 살았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타협하여 직업을 삼았고 그 일이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보다 더 재미있고, 훌륭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러나 업에 대한 만족도는 적지 않았다. 그 업을 하고 싶어서 달려드는 후배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방송계통의 일에 꽤 오랜 시간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나는 그게 얼마나 사람을 외롭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았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을 때 조차도 행복해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렇기에 현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꿈만을 좇는 청춘을, 그저 응원 할 수 만은 없다. 그건 너무 무책임한 얘기다. 이룰 수 있는 꿈인지,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집착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물론 온갖 시련과 실패를 겪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마침내 성공하는 이야기도 TV나 기사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대책 없는 꿈바라기를 마냥 맞다고 해줄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좇는 꿈만이 정답이 아니니, 가는 길에 숨통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이는 훌쩍 먹고, 내 영혼은 누더기가 돼 있다.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고 나 홀로 외로워 진다. 외부와 차단된 나는 너무나 쉽게 이성이 결여된 판단으로 불량식품 같은 달콤한 손길에 넘어간다.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영혼은 지켜야 한다. 그게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혹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여느 다른 가치도 영혼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나를 지키는 것, 그건 어쩌면 내가 신앙처럼 지키고, 가져야 할  것이다.

<악마를 위한 춤>은 SNS에서 잘 나가는 댄서들이 소속 돼 있는 7M라는 소속사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존재의 이유가 위태로운 댄서들은 코로나19 시기에 맞물려 SNS에서 비로소 카메라와 관객을 찾는다. 박수 대신 팔로워 수와 '좋아요'수는 그들이 꿈을 이루는데 충분하다. 화려한 영상이 필수적인 SNS에서 촬영, 편집 등의 제반시설이 필요하고, 유명세가 커질 수록 그들의 스케줄을 관리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한 기획사가 접근하고, 그 배경엔 셰키나 교회가 있다. 비즈니스와 종교의 결합. 오롯이 나홀로 꿈을 쫓는 이들에게 이 결합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돈도 벌 수 있고, 의지를 할 수 있는 신앙도 갖고. 시간이 지날수록 7M소속 댄서들은 가족과 단절된다. 말도 안되는 계약으로 수중에 남는 돈은 없다. 금전적 착취 뿐 아니라 영혼까지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세뇌 당한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다. 다행히 그 기획사에 소속 돼 있는 한 댄서 가족의 폭로로 그 집단에서 빠져나온 일부의 피해자들은 안도하지만, 여전히 그 집단에 소속 돼 있는 젊은 청춘이 있다. 무엇보다 교묘한 심리적 수법으로 피해자를 만든 가해자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해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베이비레인디어(Baby Reindeer)>와 다큐멘터리 <악마를 위한 춤(Dancing for the Devil)>


넷플릭스 드라마 <베이비레인디어(Baby Reindeer)>와 다큐멘터리 <악마를 위한 춤(Dancing for the Devil)>

최근에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고 나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꿈'이었다.

장르는 완전 다르지만 피해자인 주인공들에겐 모두 꿈을 좇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꿈을 가진 자들을 응원한다.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미사여구와 함께. 그러나 그 현실 속에 있는 이들은 소중한 시간과 노력은 물론, 가난을 버텨야 한다. (꿈을 온전히 지탱해줄 넉넉한 경제력이 있지 않는 한)

그런 의미로 우리가 오랫동안 중요한 가치라 여긴 '꿈'에 대해 난 좀 회의적이다. 

이게 지나치게 현실과 삶에 치여 살아가는 닳디 닳은 40대의 냉소라 해도 좋다. 

다만, 나는 꿈을 좇는 순수한 영혼들이 너무 쉽게 악인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느니 꿈보다는 현실을 좇는 것이 나를 '덜' 잃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이게 너무 소극적인 태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두 콘텐츠를 보고, 나는 매우 명료한 한 가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꿈일지라도, 내 영혼보다 소중할 수 없다는 것.


<베이비레인디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놀랍게도 실제 인물이 각본과 연기까지 한다.
주인공 '도니'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 꿈이다. 보기만 해도 술 찌든 냄새가 날 것 같은 볼품 없는 소규모 공연장에서 스탠트업 코미디를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고, 생활은 비루하다. 그러던 중 그의 욱체와 영혼을 갉아 먹는 악마의 손길이 다가온다. '대리언'은 도니가 동경했던 성공한 코미디 작가. 그는 도니가 갈망하는 꿈을 이룬 사람임과 동시에 도니의 인정욕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리언에게 도니는 너무나 쉬운 먹잇감이다. 도니는 그에게 노동착취와 그루밍, 그리고 성폭행까지 당하게 된다. 꿈을 좇던 20대 청년이 어쩌다 자아를 잃을만큼 처참하게 짓밟혀야 했을까?


<악마를 위한 춤>은 SNS에서 잘 나가는 댄서들이 소속 돼 있는 7M라는 소속사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존재의 이유가 위태로운 댄서들은 코로나19 시기에 맞물려 SNS에서 비로소 카메라와 관객을 찾는다. 박수 대신 팔로워 수와 '좋아요'수는 그들이 꿈을 이루는데 충분하다. 화려한 영상이 필수적인 SNS에서 촬영, 편집 등의 제반시설이 필요하고, 유명세가 커질 수록 그들의 스케줄을 관리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한 기획사가 접근하고, 그 배경엔 셰키나 교회가 있다. 비즈니스와 종교의 결합. 오롯이 나홀로 꿈을 쫓는 이들에게 이 결합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돈도 벌 수 있고, 의지를 할 수 있는 신앙도 갖고. 시간이 지날수록 7M소속 댄서들은 가족과 단절된다. 말도 안되는 계약으로 수중에 남는 돈은 없다. 금전적 착취 뿐 아니라 영혼까지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세뇌 당한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다. 다행히 그 기획사에 소속 돼 있는 한 댄서 가족의 폭로로 그 집단에서 빠져나온 일부의 피해자들은 안도하지만, 여전히 그 집단에 소속 돼 있는 젊은 청춘이 있다. 무엇보다 교묘한 심리적 수법으로 피해자를 만든 가해자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해보인다. 


나는 사실 사람들이 꽤 동경하는 일을 했다. 그 전에는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방송 계통의 일을 지원했던 적도 있다. 이건 나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직업을 꿈으로 갖는 것이 힘든 여느 친구들에 비해 나에겐 꽤 쉬운 선택지였다. 어른들이  늘 묻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했고, 그게 맞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꿈을 가진, 주관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취해 살았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타협하여 직업을 삼았고 그 일이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보다 더 재미있고, 훌륭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러나 업에 대한 만족도는 적지 않았다. 그 업을 하고 싶어서 달려드는 후배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방송계통의 일에 꽤 오랜 시간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나는 그게 얼마나 사람을 외롭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았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을 때 조차도 행복해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렇기에 현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꿈만을 좇는 청춘을, 그저 응원 할 수 만은 없다. 그건 너무 무책임한 얘기다. 이룰 수 있는 꿈인지,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집착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물론 온갖 시련과 실패를 겪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마침내 성공하는 이야기도 TV나 기사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대책 없는 꿈바라기를 마냥 맞다고 해줄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좇는 꿈만이 정답이 아니니, 가는 길에 숨통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이는 훌쩍 먹고, 내 영혼은 누더기가 돼 있다.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고 나 홀로 외로워 진다. 외부와 차단된 나는 너무나 쉽게 이성이 결여된 판단으로 불량식품 같은 달콤한 손길에 넘어간다.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영혼은 지켜야 한다. 그게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혹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여느 다른 가치도 영혼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나를 지키는 것, 그건 어쩌면 내가 신앙처럼 지키고,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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