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일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일의 영역에서는 줄곧 '관계'가 매우 중요했다. 도움말 받을 전문가를 섭외할 때도, 잘 나가는 연예인을 섭외할 때도 관계가 중요했다. 친한 선배들이 한 번 이상 함께 일해본 사람 중에 아웃풋이 괜찮았던 사람을 추천받고, 잘 나가는 연예인은 정석대로 소속사에 연락해서 섭외하는 것은 초보들이 겪는 시행착오 중 일부였다.
특히나 잡기 어려운 연예인을 섭외할 때는 그의 측근을 활용했다. 모 배우는 소속사의 말보다 데뷔 이후 줄곧 손발을 맞춘 스타일리스트를 매수하는 게 섭외에 훨씬 용이하다는 게 공공연히 전해오는 말이었다. 물론 정말 어나더레벨의 연예인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친분과 인맥으로 형성된 관계는 일이 '되게'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차곡차곡 쌓이는 휴대전화 연락처만큼 나의 경험치와 연륜은 쌓인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어디까지나 업계에 소속돼 있을 때나 발휘할 수 있는 관계의 힘. 그건 이직하고 나서도 지속됐다.
물론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암묵적으로 큰 회사일 수록 공채와 경력직, 정직원과 경력직 사이에 벽은 두툼하다. 그나마 이직이 활발한 곳이라면 그 벽은 비교적 얇다. 내가 몸 담았던 잡지사는 이직이 매우 잦았는데, 그래도 그 안에서도 나누기는 있었다. 회사에서 공채로 뽑았느냐,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에디터가 됐느냐, 누구의 밑에서 일을 배웠느냐, 어느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느냐 등.
지금 회사는 공채와 경력직, 학벌, 군대 등으로 가지가 나뉜다. 내가 처음 느꼈던 벽은 당연히 공채와 경력직이었다. 공채로 이루어진 이들은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며 챙겼다. 경력직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생을 하며 한 시절을 겪었던 이들이니 다른 이들보다 더 친근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그러나 그걸 대놓고 티 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특정 부서에 업무 협조를 요청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굉장히 타이트한 데드라인을 말했고, 우리는 그 일정을 지키기 어려웠다. 사정사정하며 통화를 하다 찝찝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니 옆자리 과장이 무슨 일이냐 물었다. (현재 회사에서는 한국식 오지랖이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잦다) 상황을 설명하니 담당자 누구와 통화했냐고 묻곤, 바로 친분을 표했다.
"아~ 그 형이 또 왜 그런데? 기다려봐요"
얼마 후, 그는 매우, 몹시 개운한 얼굴로
"해준대요~" 라며 특유의 해결사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씁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너는 안 친하고, 쟤는 친하니까 해준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할 수 있나? 그것도 다 큰 성인, 아니 불혹을 맞이한 사람들이? 어이없고, 허탈하고, 속상하고.. 불쾌한 감정이 가득했다.
적어도 연예인의 지인들은 눈에 보이는 거짓말, 핑계라도 댔는데, 그게 그나마 순수한 것인 걸까? 아예 대놓고 말만 하지 않을 뿐 친분으로 일의 가부를 말하는 이들이 순수한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일로 만난 우리 사이엔 '관계'로 처리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