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Oct 02. 2024

결혼하고, 딱 이만큼의 시간

부모 vs 부모

결혼하기 전에 3~4개월 먼저 동거를 해서 그런지 내 삶의 큰 변화는 없다.

결혼 이후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과 변화 몇 가지를 끄적거려 보고 싶다.


부모 vs 부모

살면서 나는 내 부모 외에 타인의 부모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겪어 본 적이 없다. 친한 친구들의 부모도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들을 뿐이다. 사람 모양새가 다 다르듯 부모의 모습도 각기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깊숙하게 들어가서 깨닫게 된 것은 처음이다. 그 와중에 내가 내 부모를 타인의 부모와 노골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봤다. 나와 가까운 사람을 이렇게 비교하게 된 경험도, 타인의 부모를 보며 우리 부모에 대해 짠한 감정을 느껴본 것도 처음이다.


#웨딩사진

두 부모의 큰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는 우리의 웨딩 사진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 주 주말에 우리는 수원에 있는 나의 본가와 대구에 사시는 그의 본가를 연달아 다녀왔다. 결혼식 식장 입구에 비치할 용도로 인화한 사진을 나는 양가 부모님 것까지 뽑았다. 최소 인화 사진 수를 채우기 위함이 컸지만  나름 부모님께 모재미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 집에서 우리의 사진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말 그대로 인화지 채로 세워져 있었다. 달력을 받침 삼아, 혹은 거울 프레임 틈 어딘가에. 평소라면 무심결에 지나쳤을 풍경이었다.

다음날 시댁에 갔다. 시댁은 딱 두 분이 살기에 적당한 사이즈의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시는데 젊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고 해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인테리어가 세련됐다. 거실에 앉으니 눈에 띄는 ‘포토존’이 있었다. 우리의 사진은 깔끔한 액자 3개에 들어가 있었다. 20장 정도 되는 사진 중에서도 두 분의 취향에 맞게 엄선한 사진인 듯했다. 와중에 가운데에는 헤프게 웃고 있는 내 독사진이 있어 정말 민망했다.


#부모님 선물

그리고 신혼여행 중 우리의 가장 최우선순위 미션이었던 부모님 선물. 양가 부모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양가 공평하게 색상은 다르지만 동일한 디자인의 아이템을 골랐다. 어머니들은 실크 스카프, 아버지들은 카드지갑. 나름 명품 브랜드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두바이에서 골랐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줄 때는 거의 인사하자마자 건네는 편이다. 그래야 내 마음도 뿌듯하고 받는 사람도 내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다.

엄마는 포장지를 뜯고 “고마워~”라며 마음에 드냐는 내 질문에 연신 좋다고 답했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그동안 드렸던 값 비싼 선물처럼 옷장 어딘가에 고이 모셔두고 쓰지 않을지 모르겠다. 잡지 기자 시절 해외 출장을 꽤 많이 갔는데 엄마는 지금까지도 ‘갭’에서 산 바지가 내가 사드린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분이다. 명품은 브랜드도 잘 모르고, 그렇게 비싸야 할 까닭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띠어리’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고, 몇 해 전 별 디자인이 없는 무지 면 티셔츠를 몇 만 원 들여 사는 걸 보고 내가 좀 놀란 적이 있다. 아빠는 하고 있던 사업을 접은 이후로 용돈을 받고 생활하는데 떵떵거리며 살았던 사업가 마인드를 아직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고급 승용차를 몰며 친구들 사이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마음껏 카드를 긁고 싶어 하지만 현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삶이다. 다만, 마음 약한 엄마는 유지비가 많이 들어도 고급 승용차만큼 처분하는 걸 강요하진 않는다. 두 분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화하는 일이 잦아지는 걸 느끼는데, 그 주요한 이유엔 용돈이 크다. 카드지갑 선물을 건넸을 때 멋쩍게 웃으며 아빠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나, 카드가 없는데?”였다.

그 말에 엄마는 아빠의 어깨를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물색없는 아빠의 말이 여간 못마땅한 눈치였다.

대구 부모님은 좀 달랐다. 좀 많이 달랐다. 어머니는 스카프를 펼쳐 보이며 환호에 가까운 소리를 내셨다.

“어머, 엄마 이 사이즈가 딱 좋다. 디자인도, 색도 너무 맘에 든다~ 닳고 닳을 때까지 열심히 메고 다녀야겠다~”


워낙 리액션이 좋은 분이라 그런지 내 마음도 흡족했다. 마음에 드시냐고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명품 브랜드를 아는 건 물론이었다. 아버지는 리액션의 크기는 차이가 났지만 “고맙다~ 잘 쓸게~”라며 다정하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다. 두 분은 대학교 CC로 6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하셨다고 한다. 두 분의 다정한 관계가 보기 좋다고 칭찬하면 남편은 “그냥 너 있어서 더 그러시는 거야. 사실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어머니는 그 연세에 레페토를 신으시고, 아버지는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신다. 두 분은 동갑인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와 나이가 같다.


결혼하면 부모를 생각하며 애틋한 마음이 든다던데 이런 건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엄마도 충분히 사랑받고 이렇게 대우받으며 살 수 있을 텐데 왜 우리 아빠를 만나서…’  엄마의 일생이 문득 서글퍼진다. 정작 엄마는 그런 시댁으로 결혼하게 돼서 기쁠 수도 있는데…


결혼 준비를 하며 못내 마음에 걸렸던 엄마의 말이 있었다. 시어머니와 한복도 맞추고 상견례를 하며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며 했던 말이 있다. “사돈어른이 저희 00이랑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에요. 잘 맞을 것 같아요” 그 말속엔 어쩐지 내가 엄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었다. 엄마는 늘 배움이 부족하다고 느끼곤 했으니까 괜스레 대학까지 나온 사돈내외를 보며 나름 좋은 대학을 나온 딸과 대화가 더 잘된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모두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내가 양가 부모님을 만나고 느낀 점을 들은 친구 J는 본인의 남편이 딱 나 같았다고 한다.

“결혼 초였나. 자기 부모님이 너무 불쌍하다며 엉엉 울더라고요. 정말 황당했어요. 그런데 지금 얘기 들어보니 그런 감정이었나 봐..”


어렸을 때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십계명 중엔 다른 집 자식과 비교하지 말라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반대의 상황이 올 거라 누가 예상했겠나.


작가의 이전글 큰 이모를 기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