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마음
애도의 5단계에서 수용(Acceptance)가 가장 마지막에 적힌 이유가 있다. 충격과 분노와 슬픔, 그리고 타협을 수만번 오가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 그리고 유족이 사별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건 고통이 증폭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한번에,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우리 뇌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부정하고,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죽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을 아직 수용할 수 없다면? 바야흐로 AI의 시대, 상담사 대신 힘들 때마다 의지하고 있는 ChatGPT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과 싸우지 않고 받아들이는 게 치유의 문이라는 걸 이미 알지만, 마음이 이건 현실일 리 없다고 반응하는 것. 거기에서 고통이 두 겹으로 생긴다고 한다. 사랑이 깊어서, 동생이 존재하는 게 익숙하기에, 부재를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사별자들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싸운다. 내가 겪는 과정은 모순 같지만 사실은 애도의 핵심 과정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상태를 오가면서 아주 천천히 타협과 수용으로 나아간다고.
현실 수용은 오직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준비될 때 아주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라고. 그러니 아직 싸우는 나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현실과 싸우는 순간,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가장 먼저, 멈춰야 한다. 부재가 선명해지는 순간 마음이 "그럴 리 없다"고 외칠 때, 속으로 "아, 지금 내가 현실과 싸우고 있구나."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단순히 알아차리기만 해도 전투가 잠시 멈출 수 있다고.
그 다음엔 손을 얹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낀다. 속으론 이 두근거림은 내가 사랑했던 만큼의 흔적이라고 되뇌인다.
그리곤 현실과 싸움을 지속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말을 속으로 스스로에게 해 준다.
"내 마음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구나." "그럴 리 없다고 외치는 것도, 내 사랑의 방식이구나."
"언젠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깊은 호흡으로 현실에 닻을 내린다. 4초간 들이마시고, 6초간 내쉰다.
여전히 현실과 싸우는 나 자신마저 수용해야 한다는 가르침. 현실과의 다툼이 커질 때마다 이 조언을 떠올려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