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까지는 타인의 인정과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돈과 명예, 성공만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아껴야했고 인생을 결코 즐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득이 되지 않는 모든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투자의 관점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시간을 쏟는 게 투자 가치가 있는가? 이 친구를 만나면 사업적으로 이득이 될지, 이 사람과 연애를 하면 내게 도움이 될지 등등. 내게 아주 따뜻한 사람들에게 조차도 나는 손익을 따지고 있었다. 인간성을 잃어갔다.
정도가 심해지면서, 내 시간을 낭비시키는 사람들을 증오했다. 나는 자기계발을 빨리 해서 하루빨리 성공해야하는데, 여자친구는 나를 자꾸 찾고. 친구들도 나를 자꾸 찾고, 일을 하는데 동료들은 계속 잡담을 걸었다. 다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내 시간을 소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병적으로 잘라냈다.
그 과정에서 연애마저 여러번 끊어냈다.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일을 더 했다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함께 있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았다. 여자친구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나는 잔인하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고 잘라냈다.
문득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와 달리 내 친구들은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저들과 달리 인생을 즐기지 못하지?"
오랜 고민 끝에 30년 경력의 정신분석가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아래와 같다.
"00씨의 얘기를 들으면 스크루지 영감이 생각나요. 스크루지 영감도 처음에는 되게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 친누이가 죽게되고 그는 완전히 변합니다. 모든 일에 손익을 따지며, 장기적으로는 인생을 전혀 즐기지 못하며 살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면이 있어 보여요."
손익에 눈이 멀어 이기적으로 살고있던 나를 돌아봐야했다. 나는 내 목표를 위해 인생에 대한 시야를 좁히고 있었다. 상담사님은 내 상태를 '몸과 정신이 존재가 아니라 도구로 쓰이는 상태' 같다고 표현했다. 도대체 언제 나라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되는가.
나는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했다. 목표를 이루는 도구가 아닌 진짜 존재. 그때부터 내 내면을 찾기위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구가 아닌 존재로서 살기위해 공부했다. 일에 시간을 쓰기보다는 내가 진정 하고싶은 일을 찾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썼다.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인 라캉에 따르면 세상에는 '타자의 욕망'과 '주체의 욕망'이 있다. '타자의 욕망'이란 세상이 내게 주입한 욕망으로, 내가 진정 원하는 욕망이 아니다. 반면 주체의 욕망이란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나는 타자의 욕망을 버리고 주체의 욕망을 찾아야했다. 그리고 오랜 성찰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커머스에서의 성공은 유튜브를 통해 주입 받은 타자의 욕망이었을 뿐, 나의 주체의 욕망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 주체의 욕망은 '창작'으로, 나는 어려서부터 작더라도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판단된 일을 과감히 버리고 주체의 욕망을 쫒기로했다. 이번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한 과정에는 이러한 사고 과정들이 있었다.
나는 도구가 아닌 존재로서 살고싶다. 내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나를 알아가다보면 더 많은 것들이 나오고, 또 다른 욕망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