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편히 살구에요 Jan 01. 2024

친구도 영원하지 않다.

"야 (나랑 대화하려면)넷플릭스 좀 봐, 현생만 살지 말고"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 나를 두고 20년 지기 친구가 한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우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재미가 없다.'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알고 지낸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한번 떠들면 서너시간을 떠들 수 있을 정도로 대화가 잘 맞았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대화가 깊게 이뤄지지 않았다. 대화의 톤, 생각하는 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는 닮았었으나 더이상 닮지 않았다.


닮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로 지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로 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대화해봐야한다. 서로 닮았다면 대화 주제도 비슷하다. 그래서 대화가 흥미롭고 공감된다. 그러나 서로 닮지 않았다면 흥미롭지도 않고 공감되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줘야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어릴때만 해도 앞서 말한 친구와는 관심사가 겹쳐서 대화가 잘 통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그 친구가 넷플릭스를 볼 때 나는 책을 읽었고, 그 친구가 서핑하고 놀러다닐 때 나는 사업을 준비했다. 그 친구의 대화주제는 가볍고 즐겁지만 내 대화주제는 항상 묵직하고 진지했다. 서로 노력해서 대화를 억지로 맞춰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다같이 모이면 그 대화에는 내가 끼어들기가 힘들었다. 다들 넷플릭스나 게임 얘기를 할 때, 나는 그것들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 주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대화를 맞추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다.


'넷플릭스를 억지로 보고, 게임도 해야하는걸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향을 맞춰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나는 게임하는 것도, 넷플릭스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하려했다. 관계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친구'가 있었다. 나를 중심에 둔 상태에서 친구들을 받아들여야지, 친구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에게 내가 맞춰가려 하면 고통이다. 


또한 인간 관계는 유동적이다. 수십년을 만나 결혼한 부부도 이혼하는 마당에 친구라고 영원하겠는가. 관계는 자연스럽게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는 것이지, 억지로 끼워맞추는 게 아니다. 대화가 맞지 않게된다면 그 관계는 거기까지인 거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남을 위해 억지로 애쓰지 않게된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나와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거다. 그들과 자연스레 관계를 맺게될테고 말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사가 바뀌면 또 그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거다. 생각과 마음이 일시적인 것이듯,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존재인가 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