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가 나를 갈아넣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왔다. 자기계발의 목적지는 미래에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미래의 나를 바라며 살게됐다.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습관이 심해졌고 어느샌가 현재의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거나, 그냥 현재에서 죽어버리거나. 나는 전자를 택했다. 내 현재의 시간은 미래의 나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현재의 나는 미완성품이었기 때문에 혐오 대상이었다. 부끄러웠다. 자기혐오는 내 배관에 압력을 쌓고 쌓다가 어느 지경에 이르자 터져버렸다. 그때부터 신경증이 생겼다.
신경증은 내가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다. 신경증의 원인을 알게되자 미래에 목표를 세팅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내 가치관을 만든 건 자기계발서였는데,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한 자기계발서에게 화가 났다. 내 신경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이후로는 자기계발이나 성장을 거부하는 삶의 태도가 옳은 거라고 생각했다. 성취지향적으로 살아온 수십년의 삶을 종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갖춰야했다. 신경과 선생님은 즐겁게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면 낫는다고 했다. 즐겁게 살자? 근데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지?
원래 나는 즐겁게 사는 타입은 아니었다. 즐거움을 낭비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산적인 활동들을 해야만 한다는 강한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매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미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다. 24시간 자기계발, 공부, 운동, 생산을 위한 로봇이었다. 그렇게 계속 살다보니 웃는 게 어색해서 미소를 지으면 입꼬리까지 덜덜 떨렸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게 즐겁게 사는 태도라는 건 난해한 개념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침착맨 이런 채널을 보면서 하하 웃으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강박증은 침착맨이나 코미디 채널에 시간 쓰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몇번 노력해봤지만, 그런 데에 쓰는 시간은 낭비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강하게 돌기 때문에 금새 끄기 일쑤였다.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즐겁게 사는 태도 자체를 공부하고 싶었다. 인생을 즐기고 향유하라는 그 개념자체를 이해하고 싶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을 펼쳐들어 지난 1년간 읽어왔다. 내가 읽은 책들은 장자, 명상 권위자 에크하르트 툴레, 니체, 긍정심리학, 뇌과학, 진화심리학,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론 같은 책들이었다.
성취란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일이기에, 행복을 위해서는 절대 성취같은 걸 쫒지 말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행복은 그러한 허무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는 성취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게끔 되어있다. 그리고 장자조차도 성취를 부정하지 않더라. 내가 읽은 책들은 일관적으로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어제보다 성장하라고 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재에 사는데 어떻게 미래의 개념인 성취가 이뤄지지? 목표는 미래의 것인데 목표를 성취하려 하는 건 결국 미래를 사는 것 아닌가?"
그리고 몇개월을 성취 없이 무욕의 삶마냥 편한것만 즐기며 살았다. 그런데 오히려 우울했다. 왜 우울한지 궁금했다. 성장에 대한 강박때문에 불안한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는 성장하지 못한 모습에 권태를 느끼고 불안을 느끼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백수마냥 사는 게 불안한 건 당연했다.
나는 살면서 열정을 갖고 도전하고 무언가를 이뤄낼 때 항상 행복했다. 다만 그 목표의 초점이 너무 미래에 가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거였다.
딜레마였다... 현재를 즐겨야하지만 나는 미래에 성취하는 걸 좋아한다. 이 두가지를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깨달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성취하면 된다."
현재에서도 성취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래의 성취라는 건 일의 '결과'다. 반면 현재의 성취라는 건 일의 '과정'이다. 수학으로 치면 미래의 성취는 '수학 시험 100점'이라는 '결과'이다. 반면 현재의 성취는 '기출문제 하나하나를 풀기'라는 '과정'이다. 하나하나를 풀 때마다 성취하는 거다. 나는 항상 너무 큰 결과만 바라보며 살았기에 지친거였다.
나는 성취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현재에서 성취하려고 한다. 항상 큰 성취를 즐기다가 작은 성취를 즐기려고 하니 새롭게 느낌을 잡아가야겠지만, 현재에서 성취하는 재미를 느껴보고자 한다. 결과는 과정이 쌓여서 나오는 거니까, 과정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