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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대디 Jan 25. 2024

지하철에서 아이폰을 주웠습니다

[점유이탈물횡령죄] 지하철에서 분실물을 가져가면 처벌받나요?



지하철에서 아이폰을 주웠다


김줍줍씨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9호선에 올랐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가장 끝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폰게임 1시간을 즐기는 것이 요새 그의 유일한 낙이다. 오늘은 전설템을 반드시 먹으리라 다짐하며 '디아블로 이모탈'을 켰다. 김줍줍씨의 강령술사가 세련된 갑옷과 투구를 뽐내며 해골병사들을 소환하려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버벅거리더니 게임이 꺼져버렸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줍줍씨의 폰은 출시된 지 7년이나 지난 구형폰이라 게임을 돌리기에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많이 실망한 줍줍씨는 음악이나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앉아 있던 맨 끝자리 바로 옆 바닥에 최신형 아이폰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줍줍씨는 순간 돈이 없어 폰도 못 바꾸고 있는 그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분실물을 가져가는 것은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혹시 몰라 몇 정거장을 더 지켜보다가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폰을 주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아이폰을 주워간 김줍줍씨는 형사처벌을 받게 될까?




절도죄


절도죄는 i) 타인 소유, ii) 타인 점유의, iii) 재물을 절취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29조).


위 아이폰의 경우 i) 형체가 있는 유체물로서 형법상 재물에 해당하며, ii) 김줍줍씨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타인소유의 재물이다.


그렇다면 분실한 물건을 타인의 점유물로 볼 수 있을까? 판례는 이에 대하여 분실한 장소가 어디인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한다.



PC방, 당구장 등 관리자가 존재하는 매장에서 분실한 경우


대법원은 공공장소라 하더라도 규모가 작고 관리자가 있는 경우 그 장소에서 분실한 물건은 여전히 그 관리자가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PC방이나 당구장등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간다면 타인의 점유물을 가져간 것이므로 절도죄가 성립한다.


피해자가 PC방에 두고 간 핸드폰은 PC방 관리자의 점유하에 있어 제3자가 이를 취한 행위는 절도죄를 구성한다(대판 2007. 3. 15. 2006도 9338).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장소가 당구장과 같이 타인의 관리 아래 있을 때에는 그 물건은 관리자의 점유에 속하는 것이고 이를 제3자가 취거 하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한다(2022. 1. 11. 2001도6158)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분실한 경우


만일 버스의 운전사나 지하철의 승무원을 그곳의 관리자로 본다면, 위와 같은 논리로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판례는 이와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승객이 놓고 내린 지하철의 전동차 바닥이나 선반 위에 있던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간 경우 이 물건에 대한 지하철의 승무원의 점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절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대판 1999. 11. 26. 99도3963).


고속버스 운전사는 고속버스의 관수자로서 차내에 있는 승객의 물건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고 승객이 잊고 내린 유실물을 다른 승객이 발견하고 가져갔다면 절도에 해당하지 않는다(대판 1993. 3. 16. 92도3170).


그렇다면, 대중교통에서 주운 물건을 가져가면 무죄인가? 그렇지는 않다.




점유이탈물횡령죄


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처벌받는다(형법 제360조 제1항).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반해, 점유이탈물횡령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의 형으로 점유이탈물횡령죄가 훨씬 가볍게 처벌된다.


점유이탈물이란 점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점유를 떠난 물건을 말하며, 유실물이란 잃어버린 물건 즉 분실물을 말한다.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문제 되는 경우는 대부분 김줍줍씨의 사례와 같이 유실물을 취득한 경우이다.


따라서 타인이 잃어버린 핸드폰 즉, 유실물을 가져가 횡령한 김줍줍씨는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법률의 착오


김줍줍씨는 아이폰을 주워가며 '분실물을 가져가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져갔다. 즉, 자신의 행위가 위법한 행위가 아니라고 믿고 행동한 것인데 이러한 김줍줍씨가 처벌받는 것은 언뜻 보면 억울해 보인다. 형법은 이러한 경우를 '법률의 착오'라 하며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16조).



정당한 이유란?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한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벌하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판례의 태도를 살펴보자.


행위자의 지적 인식능력을 기준으로 그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 나이, 학력, 직업의 경험 등을 토대로 행위자가 인식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였는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만약 행위자가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자기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그 착오는 회피가능한 것으로 인정된다(대판 2006. 3. 24. 2005도3717).


쉽게 말해 행위자의 입장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자신의 행위가 위법한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규정대로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법률의 부지


형법에 어떠한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를 법률의 부지라고 한다. 점유이탈물횡령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경우이다. 판례는 이와 같은 법률의 부지는 법률의 착오로 보지 않고 규정대로 처벌한다.


형법 제16조의 법률의 착오는 단순한 법률의 부지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행위이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이다(대판 1985. 4. 9. 85도25).


즉 처벌규정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



김줍줍씨는?


만일 김줍줍씨가 점유이탈물횡령죄의 존재 자체를 모른 것이라면 단순한 법률의 부지에 해당하므로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만일 김줍줍씨가 점유이탈물횡령죄의 존재는 알았으나, 지하철에서 분실물을 가져가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경우 형법 제16조 법률의 착오가 문제 될 될 수 있다. 그러나 깁줍줍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일반적인 지적 인식능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분실물을 주워가는 것이 형법상 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줍줍씨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착오를 스스로 허용한 셈이므로 김줍줍씨에게 '정당한 이유'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마치며


누군가 잃어버린 고가의 물건이 자신의 눈앞에 있으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도 당근으로 팔면 한몫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꼭 기억하자. 누군가 분실한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는 엄연히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어디에서 발견한 것인지에 따라 절도죄 혹은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위와 같이 습득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았다면 받은 사람 역시 장물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범죄인지 아닌지 따지기 이전에 소유자가 있는 물건은 그 소유자에게 돌아가야 함이 당연하다. 분실물을 발견했다면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고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자.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그곳의 관리자에게 맡기는 센스정도는 발휘해 보자. 나에게는 그냥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물건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물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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