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절도]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빌려쓰면?
김도적씨는 A 대학교 로스쿨생이다. A 대학교 로스쿨은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학생들에게 독서실 개인 좌석을 제공하고 있다. 매일 같이 쓸데없이 셀카질을 해댄 탓에 핸드폰 저장공간이 부족해진 김도적씨는 사진을 백업하려고 PC를 켰다. 그런데 얼마 전 용량 높은 게임들을 여럿 다운로드하는 바람에 PC의 저장공간이 거의 다 차버려 저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임을 지우는 것도 싫고, 당장 추가 SSD를 구매하기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한 가지 묘책을 생각했다.
김도적씨의 열람실 바로 뒷자리를 사용하는 동기 나놀자씨는 열심히 놀러 다니기 바빠 열람실에 나와 공부하는 일이 없으며 그 자리를 거의 창고처럼 사용하고 있다. 김도적씨는 나놀자씨의 자리 앞을 매일 지나다니는 탓에 나놀자씨가 사용하지 않는 외장하드를 책상 구석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외장하드는 1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그 위치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나놀자씨가 이를 사용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김도적씨는 그 하드디스크를 잠시 빌리기로 마음대로 결정해 버렸다.
김도적씨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나놀자씨의 책상에서 외장하드를 꺼내 집으로 가져온 뒤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백업했다. 그리고 약 4개월간 돈을 모아 자신의 PC의 SSD를 업그레이드 한 뒤 그 외장하드에 옮겨 두었던 사진들을 다시 PC로 백업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외장하드를 다시 나놀자씨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예상한 대로 나놀자씨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김도적씨의 행위는 형법상 범죄에 해당할까?
절도죄는 타인소유, 타인점유의 재물을 절취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29조).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위와 같은 세 가지 요건 외에 행위자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있을 것을 요구한다. 불법영득의사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 소유물같이 이용하거나 처분할 의사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면 자기가 소유할 의사로 훔쳐야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쳐서 쓰레기통에 버린 경우를 생각해 보자. 타인소유, 타인점유의 재물을 절취한 것은 맞지만 본인이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려는 의사 없이 훔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경우 불법영득의사가 없어서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도적씨의 경우는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사용절도란 타인의 재물을 일시적으로 사용한 뒤 소유자에게 반환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절도는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불법영득의사가 없어 절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형상 사용절도에 해당해도 절도죄로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1) 자동차등불법사용죄(형법 제331조의2)
권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자동차, 오토바이, 선박등을 무단으로 사용하면 사용 후 반환하더라도 본 규정에 의해 처벌받는다.
자동차등불법사용죄는 절도죄와는 별개의 범죄이므로 무단 사용한 물건이 자동차, 오토바이 등이라면 사용절도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고 위 규정에 의해 직접 처벌받는다.
(2) 다른 곳에 유기한 경우
판례는 타인의 물건을 무단 사용 후 소유자에게 반환하지 않고 다른 곳에 놓고 간 경우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해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피고인이 갑의 영업점 내에 있는 갑 소유의 휴대전화를 허락 없이 가지고 나와 사용한 다음 약 1~2시간 후 위 영업점 정문 옆 화분에 놓아두고 간 경우...... 피고인이 갑의 휴대전화를 자신의 소유물과 같이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하다가 본래의 장소와 다른 곳에 유기하여 불법영득의사가 있어 절도죄가 성립한다(대판 2012도1132).
(3) 경제적 가치를 훼손한 경우
판례는 무단 사용 후 소유자에게 반환했다고 해도 그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심하게 훼손한 경우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타인의 예금통장을 무단사용하여 예금을 인출한 후 바로 반환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용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의 소모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예금통장 자체가 가지는 예금액 증명기능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절도죄가 성립한다(대판 2009도9008).
(4) 장기간 사용 후 반환한 경우
판례는 무단 사용 후 소유자에게 반환했다고 해도 그 사용한 기간이 너무 길다고 판단되면 절도죄로 처벌한다. 어느 정도의 기간을 넘으면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갑 주식회사 감사인 피고인이 회사 경영진과의 불화로 한 달 가까이 결근하다가 회사 감사실에 침입하여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를 떼어간 후 4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에 반환한 경우 피고인이 하드디스크를 일시 보관 후 반환하였다고 평가하기 어려워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대판 2010도9570).
김도적씨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할까?
김도적씨는 나놀자씨가 소유, 점유하는 외장하드를 절취한 것이므로 외형적으로 절도죄의 객관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애당초 위 외장하드를 영구히 가져갈 의도가 없었고 일시적으로 무단사용하려 한 것이므로 그의 행위는 일응 사용절도로 보일 수 있다. 사용절도가 성립한다면 절도죄의 주관적 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탈락되어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도적씨는 위 외장하드를 4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반환했다는 점에서 일시 사용 후 반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용절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4개월이란 장기간 동안 주인의 허락 없이 그의 물건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법원의 입장에 따른다면 나놀자씨의 외장하드를 무단 사용 후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반환한 김도적씨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어 절도죄가 성립할 것이다.
사용절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그 행위가 적극적으로 권장, 용인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 행위가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 중한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사용절도를 처벌한다면 잠시 화장실에 간 절친의 펜을 잠시 사용하고 돌려준 경우에도 절도죄로 처벌받게 될 텐데, 이는 적어도 '정'을 중시하는 우리 정서상 분명 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친구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면 적어도 ① 사용 후 물건이 원래 있던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하며, ② 물건을 사용하다가 망가뜨렸다면 이를 사실대로 말하고 보상해야 하며, ③ 장기간 사용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허락을 받고 빌려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대법원이 ① 다른 곳에 유기한 경우, ② 경제적 가치를 훼손한 경우, ③ 너무 장기간 사용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위 세 가지 경우는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당연히 허용할 만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어떤 멋진 형님의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 사회에는 무개념의 행동을 마치 자신의 권리인 양 행사하는 김도적씨와 같은 분들이 늘 존재한다. 이런 분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했다가는 아마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의 물건을 멋대로 사용할 권리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혹시 급한 일이 생겨 친구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하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위 세 가지 정도는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지키자. 남의 물건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당연히 허용되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자. 단지 그 행위가 상식선에 있을 때에만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이다. 선을 넘어 무개념의 지경으로 나아간 행위를 우리 대법원은 용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