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 거스름돈을 더 받아가면 범죄인가요?
김사기 씨는 노트북을 구매하려고 자기앞수표 100만 원권을 가지고 집 근처 하이마트 매장에 들렀다. 거금을 쓰러 가는 터라 손이 떨렸다. 얼마 전 찜 해두었던 행사 노트북을 구매하려고 직원 A 씨에게 문의하자 A 씨는 오늘 구매하면 8만 원의 특별 추가 할인을 더해 총 70만 원까지 맞춰주겠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던 김사기 씨는 당장 그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A 씨는 오늘도 호구 하나 잡았다는 생각에 재빨리 창고에서 재고를 꺼내왔다. 둘은 행복하고 사이좋게 계산대로 향했다.
김사기 씨는 제품 결제를 위해 들고 온 자기앞수표 100만 원권을 A 씨에게 교부했다. A 씨는 전자캐셔에서 5원 원권 한 무더기를 꺼내더니 능숙한 솜씨로 돈을 세고는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말했다.
"고객님 총 100만 원 받았고요, 여기 30만 원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김사기 씨는 받은 돈을 세어보았는데 5만 원권이 총 8장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는데 8장이 틀림없었다. A 씨가 돈을 잘못 세어 5만 원권 2장을 더 준 것이었다. 사실 A 씨는 직업상 능숙한 척했을 뿐 돈을 세는 데에는 젬병이었다는 사실은 며느리도 몰랐다. 김사기씨는 솔직히 말하고 돌려줄까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유혹에 이기지 못했다.
'주길래 받은 것뿐인데 괜찮을 거야.'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 성공한 김사기씨는 거스름돈 10만 원이 더 교부되었다는 사실을 A 씨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노트북과 받은 돈을 가지고 매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김사기씨에게 형법상 범죄가 성립할까?
먼저 형법상 작위와 부작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작위란 어떠한 행동을 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의미하고, 부작위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살인죄, 사기죄, 배임죄 등 우리 형법상 대부분의 범죄는 행위자가 어떠한 적극적 행동을 함으로써 성립하게 되는 작위범이다.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47조 제1항). 법 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사기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를 요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작위범에 해당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작위범이라도 부작위에 의하여 실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부진정부작위범이라고 한다.
즉, 사기죄는 원칙적으로 행위자의 기망행위를 요하는 작위범이지만, 특정 요건을 만족할 경우 기망행위가 부작위에 의하여도 이루어질 수 있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가 성립하려면 i) 상대방이 스스로 착오에 빠져 있을 것, ii) 법률상 고지의무가 있을 것, iii)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 인정될 것을 요한다.
쉽게 말하면 '착오에 빠져 있는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의무 있는 자가 이를 말해주지 않아 그를 속인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사기를 친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점원 A 씨는 자신이 거스름돈을 더 주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착오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김사기씨에게 고지의무가 인정되고,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 인정된다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할 것이다.
여기서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의무 즉, 고지의무가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까?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대판 98도326)
대법원은 '누구라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한 경우' 고지의무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만일 A 씨가 자신이 거스름 돈을 10만 원이나 더 주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대로 노트북 판매를 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일반인의 상식적인 관점에서 명백하다. 위 노트북의 가격을 70만 원으로 하기로 하는 쌍방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는데 거스름돈을 10만 원 더 주어 결과적으로 60만 원에 팔게 되는 것을 A 씨가 용인할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사기씨에게 거스름돈을 더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란 부작위에 의한 범죄실현이 작위에 의한 범죄실현과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면, 작위에 의한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대판 91도2915)
사기죄를 예로 들면, 고지의무 있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적극적 기망행위를 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김사기씨는 A 씨가 건네준 거스름돈을 받은 뒤 액수를 두 번이나 확인하여 10만 원을 더 받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침묵하여 돈을 더 받아 간 것은 A 씨의 착오를 이용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적극적 기망행위에 의한 재물 취득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행위정형의 동가치성도 인정된다.
그렇다면 우리 대법원은 거스름돈을 더 받아간 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판례는 알고 받은 경우와 모르고 받은 경우를 구분한다.
판례는 거스름돈을 초과하여 받는다는 점을 교부받기 전 또는 교부받던 중 알았던 경우 고지의무가 인정되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한다.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잔금을 지급함에 있어 착오에 빠져 지급해야 할 금액을 초과하는 돈을 교부하는 경우, 매도인이 사실대로 고지하였다면 매수인이 그와 같이 초과하여 교부하지 아니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매도인이 매매잔금을 교부받기 전 또는 교부받던 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으로서는 매수인에게 사실대로 고지하여 매수인의 그 착오를 제거하여야 할 신의칙상 의무를 지므로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매수인이 건네주는 돈을 그대로 수령한 경우에는 사기죄에 해당될 것이지만...(대판 2003도4531)
김사기씨는 거스름돈을 교부받던 중 액수를 확인하여 자신이 초과 금전을 취득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김사기씨에게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
모르고 받아가면 아무 문제 없을까? 그렇지 않다.
판례는 초과 거스름돈을 모르고 받아간 경우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으나, 나중에 이를 알게 된 뒤에도 반환하지 않는다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하고 매매잔금을 건네주고 받는 행위를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주고받는 행위는 이미 종료되어 버린 후이므로 매수인의 착오 상태를 제거하기 위하여 그 사실을 고지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의 불이행은 더 이상 그 초과된 금액 편취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없으므로, 교부하는 돈을 그대로 받은 그 행위는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사기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대판 2003도4531).
범죄는 원칙적으로 적극적 범죄행위를 해야 성립한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적극적 범죄행위 만큼이나 나쁜 짓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자신의 배우자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배우자가 사망했다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위 사례와 같이 착오에 빠진 상대방에게 고지의무 있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건전한 상식과 도의관념상 나의 정의로운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행동하자. 우리 형법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처벌하지만, 의무 없는 좋은 일을 했다고 처벌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