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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대디 Jan 19. 2024

네, 그거 제꺼 맞아요.

[사기죄] 주길래 받은 거라니까요?



네, 그거 제꺼 맞아요


김거지 씨는 요새 돈이 없어 죽을 지경이다. 사고 싶은 것은 많은데 통장 잔고가 거의 파산 직전이다. 얼마 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어 딱히 할 일도 없는 그는 아이쇼핑이나 하러 가려고 근처 나이키 대리점에 들렸다.


새로 나온 멋진 운동화들이 김거지 씨에게 서로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고, 운동화를 살 돈이 없던 김거지 씨의 기분은 더욱 슬퍼졌다. 어차피 사지도 못할 거 기분이나 내려고 김거지 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최신 조던 운동화를 신어보려고 의자에 앉았다. 이 신발을 언제쯤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는데 뒤에서 점원 옷을 입은 키 큰 남자가 다가왔다. 다른 점원들과 달리 혼자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매장의 지배인인 듯했다.


"실례합니다 고객님, 혹시 이 지갑 고객님께서 떨어뜨리신 것 맞나요?"


그는 딱 봐도 현금이 많이 들어있는 두툼한 명품지갑을 김거지 씨에게 내밀었다. 김거지 씨는 순간 무엇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네, 그거 제꺼 맞아요."


키 큰 남자는 활짝 웃으며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아, 의자 바로 뒤에서 찾았습니다. 운동화 신어보시려고 앉으시다가 떨어뜨리신 것 같네요. 분실 안 하서 다행입니다. 신어 보시고 뭐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남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지갑을 건네주고 다른 곳으로 갔다. 지갑을 확인해 보자 예상대로 5만 원권 20매 이상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김거지 씨는 돌려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지갑을 가지고 매장에서 나왔다.



죄명은?


김거지 씨가 위 지갑을 받아 온 행위는 결과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이므로 일응 절도죄가 성립할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지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매장 주인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므로 사기죄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도죄와 사기죄를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 기준


절도죄는 타인소유 타인점유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29조).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타인소유 타인점유의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47조 제1항).


두 죄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오늘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바로 재물을 취득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절도죄는 절취행위(훔침)에 의하여, 사기죄는 기망에 의한 처분행위(교부받음)에 의하여 재물을 취득한다는 점이 양 죄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이다.


절도죄의 절취행위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그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물건을 훔쳐오는 것이다.


한편 사기죄의 처분행위란, 가해자에게 재물을 인도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주는 재산처분행위를 말한다. 즉,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스스로 상대방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것을 말한다. 처분행위가 인정되려면 먼저 처분권한이 있어야 한다. 처분권한 없는 자가 처분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김거지 씨의 죄책은? 


그렇다면 김거지 씨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할지 살펴보자.



절도죄


김거지 씨는 지갑을 흘린 누군가의 소유물인, 매장 주인이 점유하고 있던 이 사건 지갑을 가져온 것이므로 타인소유, 타인점유의 재물을 가져온 것은 맞다.


그러나 김거지 씨는 위 지갑의 점유자인 매장 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그의 점유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장 주인이 스스로 이를 건네주었다는 점에서 절취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김거지 씨에게 절도죄가 성립할 여지는 없다.



사기죄


김거지 씨는 이 사건 지갑이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것이 맞다고 지갑 점유자인 매장 주인을 기망하였고, 이에 속은 매장 주인 스스로가 김거지 씨에게 지갑을 건네준 것이므로 처분행위도 인정된다. 또한 매장주인은 사회통념상 유실물인 지갑을 습득하여 이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지위에 있으므로 처분권한도 인정된다. 따라서 김거지 씨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





판례


위와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한번 읽어 보자.


처분행위는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매장 주인은 반지갑을 습득하여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취득하였고, 이러한 권능 내지 지위에 기초하여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자에게 반지갑을 교부한 것은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하여 갑에게 사기죄가 성립하고,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대판 2022. 12. 29. 2022도 12494).


위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 기준의 핵심은 '처분행위의 존부'임을 밝혔고, 처분행위에 의한 재물의 취득이라면 절도죄가 아닌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마치며


김오락씨와 같이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이득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와 범죄자가 아닌 자를 구분 짓는 것은 마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결정을 내렸느냐에 의해서다. 김오락씨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사기범이 되고 말았다.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인데 반해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사기죄가 훨씬 더 무거운 범죄이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혹시라도 한탕할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혹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할 용기와 지혜를 갖추기 바란다. 사기의 전과가 생겨 인생이 한방에 가는 수가 있다.


범죄가 아니더라도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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