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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Jul 11. 2022

[특별편] 아베 사망 그리고 포스트 아베 시대

기시다 총리와 새로운 자본주의 

포스트 아베 시대


7월 8일. 아베 전 총리가 사망했습니다. 

참의원 선거일 이틀 전, 공개 유세현장에서 사제 총기에 의한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글에서 아베 살해범의 신상이나 범행 동기 등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본 최장수 총리의 죽음이 대낮 공개 유세현장에서 벌어진 총기 테러였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 몇몇이 뱉은 주장입니다.  


일본 -  “범인이 외국인(틀림없이 재일 조선인)이나 외국(한국과 관련 있다는 뉘앙스)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

한국 - “일본은 틀림없이 범인이 한국과 연관 있을 것이라 주장할 거야”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범인은 전직 해상자위관 야마가미 테츠야. 자신의 가족을 망가뜨린 종교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우호적이었다는 게 범행 동기인 듯합니다. 한마디로 원한에 의한 암살. 


범인이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이거나 한국과 관련 없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나타나자, 어이없게도 일부 우익은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베 암살에 한국이 연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안도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두 나라의 두 가지 모습,  모두 이상합니다.


아베가 한국 경제 때리기와 한일관계 빙하기의 주범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테러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명횡사한 것은 어떤 의미로든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아베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아베가 비명횡사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베의 개인비리와 무능함, 특히 일본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대폭 후퇴시킨 업적이 살아생전 일본인에게 냉정히 평가받기를 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아베 시대의 급속한 일본 우경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총리 재임 당시 공공연하게 평화헌법 수정을 통해, 군사대국화를 꿈꾸었던 아베의 유지가 더욱 강화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입니다. 이 걱정은 일리 있습니다. 

실제, 일부 우익 평론가(후지TV 해설위원 - 히라이 후미오)의 해석이 심상찮아 보입니다. 

(아베 신조를 죽게 한 것은 누구인가)

https://www.fnn.jp/articles/-/386838?utm_source=headlines.yahoo.co.jp&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relatedLink

“저격 사건의 범인이 어떠한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베에 대해서, 특정 언론과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테러 교사에 가까운 보도와 언동을 반복했다”

“마치 아베는 암살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공기를 만들어낸 것이 사건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동안 일본의 일부 지식인과 중도 언론이 아베 테러를 사주하기라도 했다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죠. 이 발언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선, 2019년 홋카이도 삿포로에 벌어졌던 작은(결코 작지 않은) 소동부터 알아야 합니다. 



일본 경찰의 시민 배제


2019년 7월의 일본. 

소비세가 10%로 오르는 등, 일본 서민은 점점 더 어려워지던 시기. 


아베 전 총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원 유세를 위해 홋카이도 삿포로로 떠났습니다.

아베의 선거 유세를 보던 시민 한 명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어로 “야지(ヤジ)”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전직 의원인 사퇴 요정이 외친 명언집 중 등장한 단어인 그 “야지”입니다. “아베! 그만해!”라는 단순한 야유. 

야유를 보내던 시민은 어떤 위협적 행동이나 무기로 오해받을 만한 것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홋카이도 경찰을 순식간에 시민을 둘러쌌습니다. 

유세장의 경찰은 시민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커피라도 마실래?”


야유하던 시민이 되물었습니다. 

 “왜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요?"


홋카이도 경찰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절대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경찰을 시민을 둘러싸고 그를 유세현장에서 멀리 떨어뜨렸습니다. 

근처에 아베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던 다른 시민(야유를 보내던 시민과 아무 관계없음)도 끌어냈습니다.   


일본어 표현으로 ‘시민 배제’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물론 일본의 법률을 봐도, 1인 시위에 해당합니다. 당연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입니다. 일본에서는 경찰의 행동이 위법인가 아닌가에 대한 첨예한 논란이 불었습니다.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했으니 당연히 위법이다 ‘와 ’ 공권력에 물리력이 사용된 것이 아닌 권고였으므로 합법이다 ‘라는 주장이었죠. 


 일본 법원은 이미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정부는 시민에게 위자료 등으로 88만 엔 배상하라는 판결이었죠. 

법원은 “야유에 현실적 위협”이 없었고, “선거 유세를 방해할 정도의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경찰관 직무 집햅법의 적응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홋카이도 경찰의 행위를 “불법”으로 판결했어요. 


 법원의 판결요지를 줄이면 아래와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기초로 하는 중요한 권리이면, 공공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특히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원고들의 야유는 공공적 정치적 표현행위로 인정된다”

“홋카이도 경찰의 시민 배제는 표현행위 그 자체를 제한했다”

상식적 판단이고 상식적 판결입니다. 



증오의 확산


우익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었습니다. 새로운 논리 개발이 필요했죠. 

그들은 “법원의 판결에 일부 언론과 지식인의 부추김”이 작용했고, 그 판결은 “그것은 정치적 반대를 위해서라면 물리적 폭력을 허락해도 된다라 해석될 수도 있다”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엉터리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일본 시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베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는요.  


아베의 죽음으로 극우 정치인과 평론가 등이 주말 동안 벌인 망언의 상찬이, 일본 원탑 포털인 야후 재팬의 최상단을 다시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벌인 말잔치를 다시 한번 옮깁니다. 


“저격 사건의 범인이 어떠한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베에 대해서, 특정 언론과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테러 교사에 가까운 보도와 언동을 반복했다”

“마치 아베는 암살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공기를 만들어낸 것이 사건을 일으켰다”


그들은 한술 더 뜹니다. 


“국회에서 미친것처럼 증오를 부추긴 의원도 있었다”


이건 홋카이도 경찰의 시민 배제가 명백한 불법이라 외쳤던 입헌 민주당, 일본 공산당, 사회민주당, 레이와 신센구미 등의 정치인을 겨냥한 발언입니다. 이들 야당이 아베 전 총리 암살을 사주했다고 믿는 일본인인 당연히 없습니다. 

엉뚱하게도 아베의 비극적 죽음은, 일본에서 공공장소 또는 사이버 공간에서 주류 정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기폭제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건, 아베 암살범의 범행 동기보다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입니다.  



참의원? 중의원? 


일본의 국회는 양원제입니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과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이 있죠. 

중의원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죠. 내각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중의원을 해산하고 전국 총선에 돌입합니다. 

참의원은 임기가 6년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거를 매 6년마다 하는 건 아니죠. 매 3년마다 절반 정도의 의원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가 참의원 선거입니다. 홋카이도 경찰이 시민 배제를 했던 19년의 선거 유세도 참의원 선거였죠. 


2022년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의석 정수는 248석입니다. 

각 도도부현을 지역구로 득표율 1인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2~6명까지 선물하는 중선구제로 148석을 선출하고. 비례의석 100석이 있죠.  


참의원이 상원이라고 하지만 미국식 상원에 해당하는 권위와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 예가 참의원이 총리가 되었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총리는 중의원 의원이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참의원이 총리가 될 수 있지만, 일본 헌법은 하원인 중의원이 지명한 인물을 총리에 선임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2차 대전 이후 일본 총리에 참의원 의원이 선임된 적은 한 번도 없죠. 


참의원의 대표적 권한은 비토입니다. 

중의원에서 법률 발의를 하고 통과되었다고 해도 참의원에서 심의를 거부하거나 부결시킬 수 있죠. 하지만 이럴 때도 중의원이 재의결을 한다면 제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참의원 역시 일본의 민의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동하죠. 

사망한 아베 전 총리의 1차 내각은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를 시작으로 2009년 중의원 선거까지 참패 했습니다. 결과 아베는 잠시 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결국 2011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다시 대패,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죠. 


그렇다고 참의원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참의원은 정부 주요 부처의 장차관에 해당하는 내각 각료를 제외한 공공부문의 인사동의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행 총재를 위시해 NHK 사장 등 주요 공공부문 수장의 인사동의권을 가지고 있죠. 


또한, 일본 우익의 숙원인 헌법 개정을 통한 ‘정상국가화’에 핵심적 역할이 있죠. 

그래서 이번 참의원 선거는 중요했습니다. 



자민당 압승! 압승! 압승

(도표의 ‘비개선’ 표기는 2019년 당선된 참의원 의석 숫자를 의미합니다)

아베의 죽음은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압승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  지난 19년 결과를 합산하면,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수로만 참의원의 과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여기에 범여권인 (그리고 자민당이 순한 맛으로 보이게 할 만큼 극우 일색인)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 등의 위세는 개헌 발의선을 넉넉하게 확보했습니다. 


여당의 압승도 눈길이 가지만, 야당의 몰락은 참담한 수준입니다. 

입헌 민주당은 무려 6석이나 줄었습니다. 일본 공산당은 선거구에서 1석, 비례에서 3석을 얻어 나름 선방했지만, 사회민주당은 비례 1석만 획득해 정당의 존속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레이와 신센구미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야마모토 타로의 레이와 신센구미는 선거구에서 1석, 비례에서 2석을 얻어 기존 2석에서 5석으로 의석을 늘렸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도 당선되었고, 아사쿠사 키드로 유명한 스이도바시 박사도 당선되었습니다. 


참의원 선거는 여당인 자민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역대급 엔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인한 역대급 인플레이션. 일본의 물가는 특히 수입물가는 그야말로 미친 듯 오르고 있습니다. 


개표 결과는 예상대로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왜 일본인은 불안하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걸까?


일본인은 세상이 바뀌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점은 태어나면서부터 장기 경제 불황을 몸으로 체득한 일본의 MZ세대인 사토리 세대와 기성세대가 별 차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세상이 더 예측 불가능한 격랑으로 빠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죠. 

한국인은 시민의 손으로 대규모 개혁을 성공한 집단기억과 경험이 풍부합니다. 1919년 3.1 만세 운동부터 1960년 4.16 혁명. 1980년의 광주 민주화운동, 1986년의 민주화 항쟁. 1997년 IMF, 2016~17년의 촛불 혁명까지. 

안타깝게도 일본인에겐 이런 경험이 전무합니다.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 선거에도 압승한 자민당에게 장밋빛 미래가 가득한 건 아닙니다. 

여전히 두려운 존재인 코로나19와 신형 감염병.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략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리에게도 악재 중 악재인 이 두 가지 대형 악재. 일본은 여기에 더해 역대급 엔저가 촉발한 인플레이션 대폭발이 발목을 단단히 잡혔습니다. 


국내외로 이렇게 악재만 겹겹이 쌓여 있다면, 자민당 등 집권세력은 개헌으로 이를 돌파하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헌법 개정에 반드시 필요한 참의원 2/3선도 돌파했습니다. 자민당 단독으로만 과반수를 넘었죠. 특히 32개의 1인 선거구 중 28개의 선거구에서 승리했습니다. 


기시다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채 개헌을 강행하고, 일본 우익이 그토록 꿈꾸던 ‘정상국가’로 들어선다고 일본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역대급 엔저는 수입산 식재료와 에너지 가격 폭등의 큰 이유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주요 대외 정책인 중국 봉쇄의 동아시아 주축 세력인 일본은 필연적으로 국방비 증액을 해야 합니다. 1년 예산의 1/3을 일본이 빌린 돈의 이자를 갚는데 쓰는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기시다, 황금의 3년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


황금의 3년 시작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듯이 보이는) 자민당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습니다. 

전임 행정부 수반의 급작스런 죽음은 안 그래도 현실 유지 성향이 강한 일본인의 표심을 자민당과 공명당,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의 극우 정당에게 몰렸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종의 재신임을 받은 셈입니다.


앞으로 3년간 대형 선거는 없습니다. 

자민당이 코너에 몰리거나 기시다가 불신임을 받아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전국 총선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3년간 일본 국민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일본 언론을 이걸 두고 “황금의 3년이 시작되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베의 죽음은 분명, 일본의 헌법 개정에 방아쇠가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되었다고 보는 게 옳겠죠.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베-스가에 이어 총리가 된 기시다는 헌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집권 초기부터 “새로운 자본주의(新しい資本主義)”를 틈나는 대로 외치고 있죠.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양적 팽창에 기초한 아베노믹스와 묘하게 대척점에 있습니다. 일본이 팬데믹 시대에 뒤처지게 된 주요 원인을 ‘분배’와 ‘디지털 전환’ 실패에서 찾은 거죠. 

기시다 총리는 이미 작년 가을에 수차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배 없이 일본이 성장하는 방법은 없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겠다”


이건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경제성장을 도왔지만, 그 성장의 과실인 임금인상은 거의 없었다는 그래서 일본 서민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성에 있습니다. 단지 성장에 집중하는 것 대신, 임금이 올라 성장의 분배가 골고루 퍼져야 한다는 말이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베 총리 시절에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베의 죽음은 어떻게든 일본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쩌면 그 변화의 폭은 우리 상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일본이라는 과거의 거인이 드디어 병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p.s/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위해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본부’와 ‘실현회의’라는 회의체와 실행 주체를 결성했습니다. 부디 이것이 아베 시절의 일억 총 활상 국민회의처럼 잡담과 다과만 있는 월간회의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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