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매월 네 번째 주 일요일에 봉사활동을 하는 해성보육원이다.
유난히 길고 강수량이 많았던 관계로 수해도 막대하였던 장마의 막바지이지만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린다. 오늘의 봉사는 어린이 놀이방의 청소이다. 집합장소인 보육원 사무실에서 나와 우산을 쓰고서 봉사 장소에 가는 중에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기에 일행과 떨어져서 그쪽으로 걸음을 돌려서 가보니 한 나무에서 들리는 소리가 매우 우렁차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와 동일한 색의 매미 한 마리가 둥지에 달라붙어 몸통 부분을 매우 격렬하게 진동시키고 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높이였으나. 매미의 모습을 지켜만 보기로 하였다. 격렬하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나무에 달라붙어 당당하고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는 나를 30여 년 전의 아련한 과거로 이끌어갔다.
매우 더운 여름 일요일, 산본 신도시의 아파트이다. 뒤에는 울창한 수리산이 버티고 있고, 베란다에서 보이는 앞쪽은 높은 아파트가 하루가 다르게 쭉쭉 올라가고 있다.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즐겨 나가던 테니스장에는 못 가고 오래간만에 아내의 곁에서 달콤한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맴 매에엠 맴..." 멀리서 들리던 매미소리가 갑자기 지척에서 엄청 크게 들린다. 잠시 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두 딸이 더워서 반쯤 열어두었던 문을 활짝 젖히고서 들어온다. “아빠, 아빠, 매미가 우리 집에 붙어있어. 아빠, 매미 잡아줘!” 큰딸의 외침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니 거실창의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우렁차게 울고 있다. 달아나지 않도록 방충망을 살짝 열어 매미를 잡아주니, “와! 매미다.”소리 지르며 매미를 손으로 조심스레 잡고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던 어린 딸들이 눈에 선하다.
어제 아내와 집 뒤편에 있는 달빛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걷던 수변 산책로에는 햇볕이 비추고 있어 피하고 숲 속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나무가 우겨진 길로 들어서니 엄청난 소리의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많은 매미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 이는 온 세상이 매미 우는 소리로 가득 찬 것 같아 그리 상쾌한 기분이 아니다. 매미의 울음소리 속에서 휴대폰에서 ‘카톡’하는 소리가 들린다.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가족 단톡방을 열어보니 작은 딸이 보낸 큰 손자의 동영상이다. 2돌 8개월 된 손자가 의자 위에 서서 두 팔을 펼치고서 “슈웅”하는 소리를 내니 뒤에서 엄마가 “날아가 봐,” 하니 손자는 의자에서 내려와 “슈우웅”하면서 양손을 펼치고서 날아가는 흉내를 내면서 거실을 오간다. 거실 문의 방충망에 붙어 울고 있는 매미를 손자의 요청으로 잡으려 했으나 눈치채고 도망갔단다. 아쉬움을 달래려 딸이 손자에게 매미가 나는 모습을 알려주는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을 보고서 아내와 나는 웃으면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공유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 동영상을 보고서 가족 단톡방에 “산본에서 방충망에 붙어 울고 있는 매미를 딸들이 잡아 달래서 잡아준 적이 있는데... 기억할라나 모르겠네ㅎㅎㅎ”하고 톡을 보내니 작은 딸에게서, “RGRG”(알지 알지) “자주 그랬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 그땐 참 곤충도 좋아하고 그랬는데. 그땐 참 매미가 손님 같고 그랬는데 ㅋㅋㅋ 좋았는데ㅋㅋ. 지금은 너무 시끄럽고 징그러워. 하지만 아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음.”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렇다. 추억은 좋은 것으로 남아있지만 세월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현실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련하게 들려오던 매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면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인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 손주들에게는 아련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매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