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육자
자랑하고 싶은 후배가 있다.
10여 년 전에 성당의 봉사단체인 레지오에서 그를 만났다. 나보다 5~6세 연하인 후배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약간은 수줍은 미소를 띠면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폼이 참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좋은 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인천의 유수한 사립 고등학교 영어선생이며, 부인도 영어선생이다. 그는 두 자녀를 견실하게 키웠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홀로 계시는 어머님에 대한 효심이 가득한 그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한다.
6년 전 성당 구역이 분할되어 서로 다른 성당에 몸을 담고 있지만 매월 넷째 주에 우리는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하는 날에는 보육원까지 태워주고 봉사 후 집에 데려다주는 서비스까지 한다. 성심껏 봉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형님, 봉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해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를 보면 내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 핀다. ‘나 또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주는 그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지난 일요일, 그날도 봉사 가는 길에 나를 픽업하러 온 그가 참으로 고맙다. 차에 올라탄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와 악수를 나눈 후 그동안 못 나눴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같은 고향도 아니고 자란 환경도 다른데 그와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가 통한다. 아마 깊은 맘속에 있는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 대화 도중 그의 은퇴가 다가옴이 생각나서 “형제님 은퇴까지 몇 년 남았어요?”하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형님, 우리 단원들에게는 아직 하지 않은 얘기를 형님께 최초로 말씀드리니 다른 형제님에게 잠시 비밀로 해주세요.”한다. 나는 갑자기 호기심과 긴장감이 몰려온다. “뭔데요?” “제가 이번에 학교에서 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여러 선생이 응모했는데 제가 선출되어 9월부터는 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라 말하면서 매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의 오른손을 덥석 잡고서, “축하합니다. 진짜 그 학교 제대로 된 교장 뽑았네!”하고 반가워하니 쑥스러워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그가 매우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권모술수가 판치는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도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심성의껏 하는 사람은 인정받는다는 것을 이번 후배의 경우를 보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작금, 서울의 한 초등학교의 새내기 선생님이 학교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여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땅바닥까지 떨어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맞다! 추락된 교권은 당연히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가 학창 시절의 권위적이었던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법이었고 행동지침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한마디 못하는 시대라 한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에게 엄격하게 훈육하는 선생님은 당장 학부모의 갑질을 당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너무 과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교권으로는 참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착하고 조용한 후배가 교육자의 정점인 교장선생님의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하지만 외유내강인 후배는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 믿는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위선이 가득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Pharisaei 派)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이끌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 하시고, 몸소 희생의 사랑을 실천하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