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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은총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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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Mar 01. 2024

은총 받은 꽃

좋은 형제님들


“오늘의 교본 공부는 최용주 사도요한,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지난주 교본의 마지막 부분을 마쳤기에 오늘부터는 교본의 첫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23쪽 레지오 마리애 명칭과 기원입니다.”

며칠째 겨울비가 계속 내리는 화요일, 저녁미사 후 7시 50분경부터 시작하는 성당에서의 레지오 주 회합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회의 절차 중 순번을 정하여 발표하는 교번 공부인데, 오늘은 단장인 내 차례이다.

“발표하겠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제1장 명칭과 기원.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단체로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하여 설립된 군대이다. --- 중략 --- 이들이 맨 처음 취한 단체 행동은 무릎을 꿇는 일이었다. 신앙심 깊은 이 젊은이들은 머리를 숙여 성령께 기도를 바친 다음, 낮 동안 고달프게 일한 손에 묵주를 들고 가장 소박한 이 신심 기도를 바쳤다. 기도가 끝났을 때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마리아 상으로 나타나 계신 성모님의 주관 아래,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모습의 레지오 마리애가 태어난 배경이다. --- 중략 --- 왜냐하면, 이 단체가 처음부터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성모님의 모습을 조직 안에 재현시키는 것이며, 이로써 주님을 더욱 확대하여 사람들에게 가까이 모셔다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만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나의 발표에 애정 어린 호응을 하여주는 형제님들이 고맙다. 오늘은 단원 8명 중 야간작업을 하느라 회의에 약간 늦게 참석한 베르노 형제님을  포함하여 8명 전원 참석하였다. 레지오에서는 자기의 생업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니 부득이한 결석 및 지각은 용인이 된다.  정해진 절차를 마친 후 레지오의 주 회합은 마무리되었다. ( 레지오 활동과 관련되어 알게 된 사항에 대한 비밀을 지킨다는 레지오 규정에 의거 자세한 회의절차 및 내용은 적지 않겠다.)


“단장님, 발표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쁜 꽃 가져가세요.” 항상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다니엘 형제님이 회합 진행 중 제대에 비치되었던 꽃 두 묶음을 나에게 건네준다. 그날 교본 공부를 수행한 단원에게 제대의 꽃을 주기로 하는 불문율에 의거 오늘의 꽃은 내가 집으로 가져간다. 집에서 꽃을 반겨줄 아내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 주 회합에 참석한 형제님들 -


주 회합 후 가끔은(한 달에 1~2번) 형제님들이 의기투합하여 화합의 장을 위하여 인근의 식당으로 향한다. 주 회합이 끝났으니 '2차 주회'를 하자는 익살스러운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원들끼리 각자 생활전선에서의 고단함과 즐거움을 나누면서 우애를 키우는 시간이다. 오늘은 지난주 교본의 마지막 부분을 발표한 유스토 형제님의 제안으로 '책거리'를 축하하는 화합의 장을 갖기로 하였다.  숯불 닭갈비를 포함한 여러 가지 닭요리를 하는 인근 식당에서 자리 잡은 우리 형제님들은 ‘식사 전 기도’를 마친 후 서로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서로 간에 잔을 마주치고 덕담을 나누고 잔을 기울이면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다. 가장 일이 많은 서기직을 수행하는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컨디션이 안 좋아 술잔을 거부하였다. 술을 좋아하는 형제님인지라 애석하다. 

우리 형제님들은 나를 중심으로 노장파와 소장파로 나뉜다. 노장파는 현역에서 은퇴 후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영위하하고 있는 4명이며, 소장파 4명은 현역으로 각자의 사업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노장파 중 맏형인 유스토 형제님은 유수한 대학교의 식품학 교수님 출신으로서 아직도 청아한 목소리로 최근까지 합창단 활동을 하셨으며, 종종 촌철살인의 유머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신다. 

작년까지 건설현장 전기 PM(Project Manager)이었던 스테파노 형제님은 나이에 비해 동안이며 쾌활한 성격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끄신다.  

국내 대기업(한국타이어)에서 퇴직한 요셉  형제님은 과묵한 성격으로 조직의 위계질서의 중심을 잡으신다.

노장파 막내인 나 사도요한은 10여 년 전에 퇴직한 포스코에서는 해외계약을 수행하였다. 퇴직 후 인근 도서관에서 글쓰기교육을 이수한 후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쓰고 있다. 

소장파의 맏형인 베르노 형제님은 산업중장비를 운영하는 사업체 대표로서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산업전사이다. 활달한 성격과 행동력으로 조직의 확장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기계부품 도소매점을 견실하게 운영하는 바르도 형제님은 각종 스포츠와 잡기에 능하다. 특히 성전 내에서는 골프왕으로 통한다. 

건설운송업체 대표인 다니엘 형제님은 소문난 애처가로서 부인을 모시고 전국의 순교지와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낭만파이다. 

파주에서 고무제품 제조업체와 부동산 대여업의 대표인 프란치시코 형제님은 조직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다. 작년까지 우리 쁘리시디움의 단장이었으나 당시 서기였던 형제님이 일신상의 사유로 퇴단하여 서기직이 공석되자 단장직을 나에게 인계하고 하위직인 서기를 자진해서 맡은 희생정신이 참으로 크게 느껴진다.


맏형과 막내의 나이 차이는 20살 이상이며, 서로가 다른 형태의 인생을 살아왔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화합의 자리인지라, 다양하고 흥미가 넘치는 이야기가 오간다. 때로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나와 약간은 긴장의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형제님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적당한 선에서 그치고 다른 정겨운 대화로 연결된다. 사모님들의 원성이 두려워 너무 늦게 자리를 연장시킬 수 없다. 11시경에 ‘식사 후 기도’를 마치고서 각자 집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술을 마시지 않은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유스토 형제님을 모시고 차가 있는 성전 지하주차장으로 향하고, 바르도 형제님은 자기 걱정하지 말라하며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도보족 4명이 남았다. 나는 다니엘 형제님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스테파노 형제님과 요셉 형제님은 자기들의 집 방향으로 향한다. 성격이 쾌활한 다니엘 형제님과 웃으면서 인생의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채드윅 국제학교 앞이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좋은 형제님들과 보낸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다니엘 형제님과의 악수로 마무리하면서 홀로 집으로 향한다. 


- 우애를 나누고 있는 형제님들 -


집의 현관에 들어서니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하는 아내는 보던 책을 책상에 놓고서 환히 웃으며 마중한다. 어깨를 가로질러 맨 크로스 가방 한쪽 끝에 꽂힌 두 송이의 튤립을 나보다 더 반긴다. “어머 예뻐라! 오늘도 성모마리아님께서  은총주신 꽃을 가져왔네요!” 입이 귀에 걸린다. 아내는 황급히 도자기 꽃병에 물을 채워서 꽃을 꽂는다. 식탁에 올려놓은 꽃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소확행(小確幸)이 이런 거구나란 생각이 든다. 


새벽에 갈증을 느껴 주방에서 물을 마신 후 식탁에 놓여있는 ‘은총의 꽃’을 보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성가정 기도를 하며, 우리 형제님들의 가정에도 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빈다. 


“저희 가정이 말씀 위에 서게 해 주시고 

성모님 도움의 은총으로 성가정이 되어 

빛의 역할을 하게 해 주십시오.

 아멘!”


- 은총 받은 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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