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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혼삶 Jan 23. 2020

에세이 :: 서림동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RECORD: 서림동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작년 12월 초, 서울대학교 사용자경험 연구실 식구들이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학교를 나왔다. 커뮤니티와 직접 만나며 함께 문제를 연구하는 살아있는 실험실, 즉 리빙랩을 서림동 원룸촌의 쉐어하우스 건물 1층에 차렸기 때문이다. 새로 입주한 이곳에서 우리가 연구할 문제는 다양한 1인 가구의 이슈들. 그래서 리빙랩의 이름은 명확하고 깔끔하게 ‘혼자잘살기 연구소’로 지었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리빙랩으로의 입주가 아직 어색하고 새로울 때 첫인상을 기록해 놓기로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출근길], [업무 중], 그리고 [퇴근길]로 나누어 연구실 벽에 간단한 여정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떠오르는 각자의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지도위에 붙였다. 리빙랩의 첫인상을 담은 우리의 여정 지도, 저니맵은 서로 다른 글씨를 품은 포스트잇과 함께 채워져 나갔다. 쉐어하우스 1층을 넘어 건물 근처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연구실로의 출근길

오전 9시, 빠른 발걸음과 생기 없는 표정을 하고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나 우리는 그들의 주거지역으로 출근한다. 지도에서는 알 수 없던 오르막과 계단을 지나고, 구석구석이 꽤나 복잡해 익숙지 않은 골목길을 거치는 출근길. 차가 없는 학생들이 지름길로 빠르게 출근하기 위해서 감당해야하는 200개의 계단에 불평을 하기도 한다. 기다란 계단 중간 지점에 있는 고양이 쉼터 근처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들을 잠깐 구경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근처 가게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지, 대부분의 가게는 아직 열지 않았다.



업무 중 돌아다니며

포스트잇을 사용해 순간의 생각을 빠르고 쉽게 공유한다.

혼자잘살기 연구소가 입주한 쉐어하우스는 1인 가구가 대부분인 원룸촌에 위치해 있다. 모두가 퇴근, 혹은 하교 후 쉬러 오는 주거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1인 주거 형태가 많다는 점은 재미있는 인상의 요소들을 던져 준다. 어떤 연구원은 이를 통틀어 “이 동네만의 문법과 분위기”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거 지역이 그렇듯, 낮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돌아다니는 몇몇 사람들 또한 대부분 혼자 혹은 둘이며, 근처의 어느 식당을 가도 ‘혼밥'은 너무나 당연하고 빈번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대여섯 명이 몰려다니는 연구실 식구들은 이목을 끌기도 한다. 1인 가구가 많은 지역답게, 슈퍼에서는 1인이 조리할만한 양의 야채들을 포장해 팔고 있다.


이곳에서는 도심 번화가에서 찾기 힘들었던 동네 마트와 구멍가게들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카페를 찾는 재미도 있고, 인스타그램 맛집 같은 곳이 아닌, 가성비 충만한 백반집과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점심시간의 묘미다. 사람들이 출근하고 불이 꺼진 원룸촌의 칙칙함 속에서 작은 마트와 식당들이 빛이 되어 주는 듯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퇴근길에 대한 인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감상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퇴근 시간인 6시에서 7시에는 퇴근 차량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연구원들은 입을 모아 이곳의 차량 문제에 대해 지적을 했다. 서림동 원룸촌은 차가 꽤 많은 편인데, 인도가 따로 없어서 사람들이 알아서 차를 피해 다녀야 한다. 부족한 가로등으로 인한 어둠과 복잡한 골목길은 이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퇴근하고 있으니, 만약 눈이 온다면 운전이든 걷는 것이든 굉장히 위험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별히 모두에게 한번 이상은 위험하다고 언급된 곳은 지름길 계단이다. 계단 근처 골목에는 가로등이 적어 주변은 늘 어둡고, 경사는 가파른데 계단의 높이와 폭이 일정하지 않아 자연스레 온몸이 긴장하게 된다. 지나가다보면 가끔 계단 옆 정자에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고양이를 보겠다며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그 새까만 인영에 쿵 내려앉기도 한다. 


해가 진 후에는 다소 적막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로등이나 불 켜진 건물이 부족한 골목길 사이 사이에 어둠이 드리우고 고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고요한 골목길은 오토바이 소리나 대문 여는 소리 등 작은 소음에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어둡고 고요해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 밤의 골목은 연구실 식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듯하다.



처음의 경험들로 저니맵을 채워가며 우리는 새롭게 자리 잡은 이 공간의 인상을 탐색했다. 이제 리빙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가 인상의 일부가 되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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