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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Apr 08. 2020

설명할 수 없는

라이프 0

 과학적 재고 따지기는 공부 따위에나 도움이 되었다. 20대가 되고 나서, 그러니까 조금 더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겪었던 어려움 중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해왔던 10대의 나. 그래서 0과 1로만 구분되는 컴퓨터가 좋았나 보다. 그것에는 애매모호함이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에. 아마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매우 매우 큰 오산이었지.


 통제는커녕 떠받들듯 모셔도 좀처럼 내 맘대로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는 나를 배신했고, 잘 다루는 친구들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잘해서 따라갈 의지조차 들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포기한 채 탱자탱자 놀며 2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술에 취해 강아지가 되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처절하게 좋아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은 많았다. 다만 그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설명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는 왜 그를 좋아하는가, 나와 그 친구는 왜 멀어지는가, 같은 것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것. 그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의문이었다.


 찾을 수 없는 근거에 대한 해결책 같은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의 내 삶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무 살의 내게 그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나 보다. 자신만만하고 오만했던 나. 컴퓨터와 일상은 그런 나를 절망으로 교정했고, 나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으니 이것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는 수밖에. 술을 곁들이거나 흐르는 시간에 기대면 어찌어찌 혼란한 마음을 버텨볼 만도 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나는 이러한 비과학적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했고, 흔한 일 정도는 휙 넘길 수 있는 이른바 짬이 조금 찬(?)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내 삶이 조금 짜증 날 때도 있고, 완전히 멘붕에 빠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마다, 이런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논리적일 수 없는 나. 우왕좌왕하는 나. 나조차 알 수 없는 내 감정에 무차별적으로 휘둘리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글로 적음으로써 알아내 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일기도 에세이도 아닌 이상한 무언가를 쓰게 될 것이 뻔하지만, 적어도 격주로 한 편씩은 일상과 겪었던 감정들을 꺼내보고 싶다. 진부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겨나 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 아무튼 이런 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조금은 에세이스러운 제목을 붙여보았다. 이러면 내가 잘 쓰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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