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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May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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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2

 힙해 보이는 사람들의 방을 보면 하나같이 자그마한 포스터나 엽서가 벽에 붙어있었다. 그게 괜찮아 보였던 나는 그런 것을 팔만한 독립서점 따위를 검색하고 있었다. 7시가 넘어간 시각, 종로 YBM 뒤편에 멈춰 서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8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멋있어 보이는, 그런 것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

 지난 주말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상황이 잠잠해지면 한 번 놀러 오라는 전화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주중에 누나한테 다시 카톡이 왔다. 할머니가 주말에 같이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가는 게 맞겠다는 누나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다가올 어버이날도 있으니 누나는 용돈을 챙기고, 나는 꽃을 사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 가기 전날부터 광주에서 친구들이 모일 예정이니 너도 내려오라는 친구의 카톡을 받고 말았다. 할머니 댁에 가야 해서 어렵다고 답했지만, 사실 광주에 갈만한 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가는 날을 늦추었다가는 할머니가 실망하실 것이 뻔해 (조금 타박도 하실 것 같아) 포기했지만 말이다.


 과학계가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노화를 거스르기란 힘들어 보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왜 무서운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늙으면 늙는 거지. 주름이 생기고 검버섯이 올라와 외적인 매력은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부쩍 남을 욕하는 빈도가 늘었다. 자기 비하도 같이.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할머니를 보며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원래 그런 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그래서 무서운 거겠지. 내가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유지될 수 없다는 것.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변해가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나 있을까.


 하루에 다섯 끼쯤 먹고 뒹굴거리던 중, 갑자기 할머니가 휴대폰 사용법에 대해 물었다. 통화의 기능으로만 휴대폰을 썼다는 것에 새삼 놀란 나는 받은 문자를 보는 법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방법, 그리고 찍은 사진을 갤러리에서 보는 법을 알려드렸다. 몇 번의 반복 후에야 할머니는 혼자서 사진을 찍고, 증손녀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본인이 무식하긴 하지만 조금 젊은 때였더라면 스마트폰도 쓸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말도 계속하셨는데, 아무래도 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나는 적당한 기종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대리점에 가서 둘러보자는 내 말을 들은 누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자며 나를 말렸다.


*

 집에 도착해 반찬과 곶감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광화문으로 갔다. 갈 때마다 보는 이순신 동상과 경복궁, 친구와 자주 왔던 미술관과 베이글 카페를 돌았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평온한 분위기를 즐겼다.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애기들을 보며 휴일다운 휴일이라고 생각했다. 흐려서 덥지 않은 날씨와 낮은 볼륨으로 듣는 음악까지 딱이었으니까.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오래 걸었더니 조금 힘들었다. 힘없이 을지로를 걷던 중 모 독립서점 앞을 우연히 지나갔다. 지도 앱에서는 8시까지 영업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7시 30분을 조금 넘었으니까 괜찮겠지. 들어가서 영업 중이냐고 물었더니 그렇긴 한데 45분 마감이라고 말했다. 왠지 금방 나가줬으면 하는 것 같아 좁은 서점을 한 바퀴 쓱 돌아본 뒤 나왔다. 예쁜 무엇도 보이지 않아 얼른 마지막 카페로 갔다. 


 청계천 앞 어두운 거리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세 번째였던가. 생각하자 갑자기 내가 이곳에 이렇게 있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힙하다는 카페와 베이커리, 미술관과 독립서점을 찾아가려 했던 것. 어떻게 하면 사진이 예쁘게 나올지 고민하고, 그렇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던 것. 얼른 나가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가 주셨던 반찬을 대충 구겨 넣었던 것까지. 그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다른데 이런 것들을 경험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배은망덕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그런 세상에.


 97-39. 58년의 차이는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것의 반도 아직 살지 못했다. 엄마와 할머니께 새로운 전자기기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 귀찮다가도, 조금 슬퍼지곤 한다. 어릴 땐 내가 그들에게 배우곤 했었는데. 왜 새로운 무언가를 익히는 것에 점점 둔감해져야 하는 걸까. 무슨 총량의 법칙이 있는 듯, 경험이 많아질수록 새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씻고 나니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카메라로 내가 드린 꽃을 찍었다고 했다.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할머니는 웃었다. 아무래도 다음엔 정말 스마트폰을 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덜기에 다른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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