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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May 20. 2020

자존감에 대한 생각

라이프 3

 수능이 끝나고 각자 갈 대학이 정해졌을 무렵, 나와 친구들은 촌구석 어딘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파스타 집에 앉아 어색하게 고상한 척을 하고 있었다. 곧 헤어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얘기까지 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타이밍이 되어 어쩌다 보니 나는 너희들이 다른 사람과 친할 때 질투가 난다는, 그러니까 친구 사이로서의 독점욕이 생긴다는 그런 말을 꺼내고 말았다. 나름 어렵게 꺼낸 말이었는데 한 친구는 그것으로 나를 놀렸다. 이런 말과 상황에 저런 반응이라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늘 그렇듯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싶지 않던 나는 잠자코 음료수만 마시며 화를 다스렸다. 결국 그와는 어떻게 되었나? 연락이 끊어진 지 3년이 넘었다. 진정성이 배제된 채 이어져있던 유대는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심을 내비쳤을 때 호응이라는 것이 따라올 수 있는 거구나, 대학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의 가치가 무시되고 평가절하되던,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환원시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했던 중, 고등학교 생활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작게나마 생긴 빈틈을 보듬어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약점이나 공격할 빌미가 되었다. 심지어는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적 중심의 대한민국 사회가 우리를 괴물로 만든 걸까? 책임을 돌리고 싶었지만 딱히. 성적에 관심 없는 날라리 친구들이 오히려 그런 것에 있어서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었냐고.


*

 친구의 애인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아니다. 자의식 과잉이다. 제안까지도 아닌 그냥 소개해줄 만한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는(?) 식의 말이었다. 나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직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비루한 변명과 함께. 사실은? 그분이 좀 여러모로 괜찮다는 말에 겁을 먹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왜 겁을 먹었나?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것은 때에 따라 맞는 말이 되기도 하고, 틀린 말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낮에는 종종 틀리고 밤에는 자주 맞다.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통 낮에는 자신감이 조금 샘솟고, 밤에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나. 누군가에게 부족한 나를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랬다간 모두 나를 떠나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쩔 때는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맞다는 자기 합리화까지 하곤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이유가 있다. 내 자존감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싶지 않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러한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 대충 예상한 바로 떠드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타인들의 멸시와 자존감 하락의 무한 굴레에 빠져버리기 쉽다. 이상하게도 자존감이 낮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못나 보이곤 하고, 그에 따른 타인의 부정적인 반응은 다시 자존감을 낮춰버리는 효과를 일으킨다. 내가 못생겼다거나 성격이 나쁜 것 같다는 상세한 이유까지 덧붙이면 그 쳇바퀴는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나는 심연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럼 이런 글을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겐 무서운 것이 없는 법이고 사이버 세상이라 조금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도 맞다. 헛소리 끝.


 자존감이 좀 낮다. 열등감도 넉넉하게 있다. 나를 크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동경하고 처지에 실망하며 그런 감정을 분노와 멸시로 바꿔버리곤 한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한다.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건지, 아니면 무언가 나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책임 전가를 좋아하는 나는 일단 후자에 무게를 두고 고민하곤 했다. 그러다 떠오른 지점은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서운하거나 기뻤던 내 마음을 좀 더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왜 그것은 남자답지 못하고, 약한 것으로 폄훼되어 나를 틀어막았던 걸까.


 칭찬에도 크게 익숙하지 않아 친구들이 내게 매력적이라고 할 때마다 웃어넘기는 식으로 피해왔다. 친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런데 지난 주말 한 술자리에선 본인은 못생긴 사람과 친구 하지 않는다는 위험한(?) 발언이 나왔다. 농담이었겠지만 약간 진담으로 들리기도 했는데, 그래서 조금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자존감이 급격하게 상승했다거나 실제로 잘생겼으니 내 얼굴을 기대하시라는 티저를 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못생기지 않았다’와 ‘잘생겼다’ 사이의 갭은 상상 그 이상이다.) 내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는 자주 착각에 들게 한다.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그런 것. 반복되다 보면 진짜가 되기도 하는 걸까.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자주 마음 먹지만 흔들릴 때가 많이 있다. 이런 나를 가만히 둬도 되는 걸까. 이러다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으면 어쩌지. 그렇지만 흠이나 상처를 드러내더라도 곁에 남아 위로와 걱정 어린 타박을 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에 위안을 얻는다. 진심이 섞여있는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내겐 여전히 존재하고, 이것이 내가 조금은 좋은 사람인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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