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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Jun 03. 2020

MBTI의 굴레

라이프 4

 가난에 허덕인 유구한 역사가 있다. 아니, 가난인가? 애초에 돈은 조금 있었다. 그것을 너무 많이 써버려 돈이 없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가난했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쨌든 가난한 기분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내일 없이 지갑을 털어내던 행위는 내일만이 아닌 모레, 글피를 넘어 1년 뒤의 내게도 영향을 미쳤다. 돈이 떨어졌을 때 소비를 그만두었다면 그러진 않았겠지만 나는 어떤 방법을 찾아내서라도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 그게 내가 사는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인간다움의 일부는 끊임없는 소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내게 돈 쓰는 일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빚을 진 것은 아니었다. 자잘하게 지곤 했다. 그러한 채무는 내 현금 유동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한동안 고통을 받았으며 풀타임 근무를 시작한 지금에 다다라서야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그저 그런 얘기. 왜 나는 이렇게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가? 궁금하던 찰나 지겹게도 타임라인을 맴돌다 이제는 한물간듯한 MBTI에 손을 뻗어버리고 말았다.


 검사 결과 ESFP.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이란다. 천부적인 스타성 기질을 타고났다느니, 웃음과 오락에 빠져있다는 등 어쩌고 저쩌고 긴 부연 설명이 맞는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하게 느껴질 때쯤 갑자기 신빙성을 높이는 문구가 나타났다. "... 특히 신용 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은 이들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이거 완전 장난 아니네, 생각이 든 나는 ESFP를 검색해서 누가 만들어 놓은지도 모를 유형별 특성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무위키에서 찾은 말. "타인을 기쁘게 해 줄 '깜짝쇼'를 준비하면서 즐거워한다” 헉, 이것도 정말 나잖아. 쇼맨십이 강하다는 특징을 처음엔 부정했으나 친구들은 완벽하게 동의하는 듯했고, 가만 생각해보니 많은 술자리에서 재미를 끌어오지 않으면 안 됐던 것도 같았다. 혹여나 피곤해서 텐션을 올리지 못하는 날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거 뭐야. MBTI로 가득한 타임라인을 보며 유사 과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혀를 끌끌 차던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

 일주일 내내 기다렸지만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흠칫하는 내가 싫었다. 서울에 온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나를 피하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조금 심란했다. 술을 마시고 한 차례 연락할 뻔한 위기도 있었는데 옆에 있던 현명한 친구들이 나를 말려준 듯했다. 사실 내게 큰 발언권은 없다. 이미 그 친구는 내가 본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것으로 나를 갖고 논 것과는 별개로, 사람 마음이란 원래 내로남불이 기본 탑재되어 있으며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싫어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사실 나도 많이 그래 왔다.) 모든 일방적인 애정 관계에서는 내가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터득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행복 회로의 가동을 멈추고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아마 이젠 서울을 떠났을 것이고,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생일을 그냥 넘겨버려야 할지, 그런 것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전혀 기다리지 않던 누구에게선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애인과 헤어졌다는 그의 말. 나와 키스 한 번 했다고 어떤 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그러기엔 그에게는 예의가 너무 없었고, 나는 마음이 떠버린 지 오래였다. 1년 전쯤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또다시 과잉되는 자의식.) MBTI는 쉽게 질리는 것이 내 연애적 성향이라고 말했다. 꽤 맞는 것도 같다. 지나온 연애를 (딱 한 번이지만) 살펴봐도 그랬고, 호감이 가는 누군가가 휙휙 바뀌곤 했으니까. 가끔은 짝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냥 쉽게 질리는 성향이라 그랬던 거구나, 원인이 될만한 무언가를 찾으니 다행인 것도 같았다. 실패할 가능성이 명확한 애정관계에만 흥미를 느끼는 게 과연 아닐지. MBTI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잘 털어놓는 것도 ESFP의 특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나 보다. 무슨 일만 생기면 친구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남 얘기하듯 이야기보따리를 풀곤 했다.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다던가, 누구랑 뽀뽀를 했다던가 하는 것들. 가만히 있기엔 우스운 일이 꽤 일어나는 편이고, 그걸 말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사실 내가 조금 망가지더라도 남들이 재밌어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는 그런 것에 너무 부담을 갖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뭔가 이름 모를 의무감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러는 이유는 MBTI가 아니고서야 설명될 수 없는 게 아닌지.


 며칠 동안 이런 심리 검사와 관련된 것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를 설명하는 것인지, 결과가 나를 만드는 건지 혼란스러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떤 특징에는 나를 끼워 맞추기도 했다. 관련 콘텐츠는 너무 많았고 이것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본인의 감정이 무엇인가로 설명된다는 것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취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 누군가 만나자마자 저는 ISFJ입니다,라고 소개를 해버린다면 틀에 박힌 채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특정한 행동의 이유를 성향 탓으로 몰아버릴 것도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 만나는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의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그런 흥미로운 과정이 없다면 사이버 세상에서 가면을 쓰고 하하호호 알맹이 없는 대화나 나눴겠지.


 이쯤 즐겼으니 MBTI는 슬슬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 흥분을 잘하고 목소리가 큰 것,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행동에 옮기는 것, 정이 많고 건망증이 심한 것 까지.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얻는 정도면 된 것 같다. 다만 여전히 하나 걸리는 것은 ESFP의 연애적 성향. 쉽게 질린다니, 진득한 연애를 하고 싶은 내 욕심에 걸맞지 않다. 그냥 이것 때문에 MBTI 신봉에서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ESFP가 원래 생각이 단순하고, 고민을 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린다던데. 이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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