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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drink Jun 18. 2021

호숫가에서 그날

운전연습

난 차를 타면 '자는 멀미' 를 한다.  또 자는구나.. 멀미 하는구나.. 엄마 아빠는 그렇게 푸르르 웃고 말지만, 사실 난 자는 척 하는 횟수가 훨씬 더 많다. 자는 척하는게 더 편하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보다는 귀에 꽂고 듣는 노래의 노랫말에 더 행복하고 슬프다. 멋진 호수가 있다고 가보자 하실때, 차라리 혼자 집에 있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늘 '이렇게 가족이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겠나..' 하시니 따라나섰다. 난 어차피 차에서 자면 되니까.. 호수가 별거겠나..생각했다.  

    엄마는 별거 아닌거에 감탄을 연발하고, 아빠는 이런 시간을 함께 할수 있는거에 감사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이야기 한다. 몇시간을 이러겠구나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대화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꽤 오래 잔거 같다.  차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아빠가 호숫가에 다 왔으니 내리자며 차 시동을 끈다. 머리가 눌려 우스워진 나를 보고는 엄마는 까치발을 하고 서서 머리를 매만지려 한다. 그것도 귀챦아 머리를 치운다. 멋쩍게 눈 한번 흘기는 엄마는 서윤이옆으로 붙어 함께 호숫가를 향해 걷는다. 그럴줄 알았다. 그냥 호수였다. 게다가 안개도 자욱해 도대체 뭘 보라는 건지.. 보트를 타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엄마는 부러운 눈빛을 보내고 서 있다. 제발 저거 타자고 안했으면 좋겠다. 가족들과 몇걸음 떨어져 서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이쪽으로 오라는 표시를 한다. 나? 나보고 오라는건가? 식구들을 다시 돌아보니,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를 보느라 아무도 이쪽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인가? 다시 할아버지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본다. 여전히 손으로 오라는 표시를 한다. 가 보자...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가보자. 

모자 아래로 비친 할아버지의 미소때문인지 가도 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할아버지는 걸음이 매우 빨랐다. 내가 겨우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두면서 마을을 향해 걸어들어갔고, 어느새, 색이 바랜 빨간 오래된 차 옆에 서 있는 할아버지.. 나에게 운전해본적이 있는가 묻는다. 아직은 할수 있는 나이가 아니고, 해 본 적도 없다고 하는 나에게 무작정 차키를 건네며, 

'내가 뒤에서 살살 쫓아갈테니, 한번 해보지 않을래? 이 길로 쭈욱 가다가  왼쪽에 하얀 집이 나온단다. 가 보자' 


   감흥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족들이 걱정하겠지만, 이 좁은 동네 한바퀴 돌고 와도 괜챦겠지.. 아빠 어깨 너머로 본대로 서툴지만 살살 차를 움직여 본다. 움직인다. 정말 움직인다. 백미러로 보니, 할아버지가 웃음을 지어보이며 괜챦으니 계속 가라는 손짓을 한다.  긴장되지만 웃음이 나고, 손에 땀이 나지만 신기했다. 옆에 뭐가 지나가는지..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알리가 없다. 그냥 길이 있으니 따라갔고 뒤에 할아버지가 쫓아오니 괜챦다는 생각밖엔 없다. 엄마 아빠 걱정하시겠지만, 운전에 성공했다 하면 기뻐해주시겠지 생각도 잠시 했다.      

    천천히 얼마나 갔을까.. 가고 있는 길 왼편에 하얀색 이층집이 보인다. 저 집인가보다 생각하며 처음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살살 틀어 겨우 Drive way 에 어설프게 차를 올려 놓고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운전해서 온 차에서 내려 내 양 어깨를 꽈악 붙잡고 해낼줄 알았다며 수고했다며 웃으며 집으로 향했고, 흥분이 아직 남은탓인지 두번 생각하지도 않고 따라 들어갔다.  

좁은 현관에서 Red- Black Buffalo Check의 두툼한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 등을 보고 서 있다. 아까 살짝 속도를 내봤던게 기분이 좋더라.. 면서 얼굴을 비껴 할아버지를 마주보고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엄마가 서 있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고, 쌀쌀해 덧입은 가디건이 흘러내려 있고 맨발에서는 군데군데 피가나고 있었다. 엄마가 날 찾고 있었구나...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는 날 보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수가 없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그냥 털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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