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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drink Jun 24. 2021

그들의 인생을 그리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마무리. 그리고 진짜 시작

  

     경애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후즘에는 들이 닥칠 엄청난 수의 손님들을 위한 음식 준비와 집청소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이 제일 분주하다.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나면 여행가방을 싸야하고, 머리를 매만지러 미용실에도 들러야 하며 그리고 생전 처음 입어보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경애는 설겆이를 하면서 더욱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12월이라 차디찬 물에 손을 계속 대고 있으려니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진다.  눈가가 따뜻해지더니, 이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늘은 경애가 결혼 하는 날이다.  창밖을 잠시 살펴보니 어두컴컴한 것이 날이 궂다. 눈이라도 쏟아질 모양인건지.  그러나 걱정은 별로 되지 않는다. 어차피 경애의 손님은 친구 몇 뿐이고 나머지는 신랑쪽 손님들이거나 언니와 형부의 손님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쭉 연락해 오던 친구들이 다이다. 회사에 취직한 순영이, 교대에서 선생님 될 준비를 하는 영옥이, 경애 다음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미선이는, 제일 먼저 결혼하는 경애의 기쁜 날을 앞두고 함께 설레어 해 주었다.  어쩌면 신부인 경애보다도 더 신난 것 같았다. 

   경애는, 이 결혼이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도 없고, 잘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믿음도 갖고 있지 않다. 경애는 그저, 친정이나 다름없는 언니의 집에서 벗어나 ‘나의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지밖에는 없었다. 언니와 형부가  20살이 훌쩍 넘은 여동생을 그리고 처제를, 아이 넷을 키우면서 계속 돌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간 먹여주고 입혀주고 한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섭섭하고 눈물날 일도 많았다. 부모없는 사람의 설움이 짙어서 더 마음에 크게 콱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부터인가, 경애는 자신의 처지때문에 상처가 저절로 커지는 이상한 병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픈 기억을 되도록 빨리 접어 버리고 없애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비록 결혼식날 아침에도 걸레를 손에 들고 바닥을 닦고 있지만, 오늘도 그렇게 , 특히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니와 형부에게, 그리고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 아빠에게  할 도리라 생각했다. 그래야만 모두가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준비를 다 마치고 식장을 향해 떠날때는 눈발이 말도 못하게 거세어졌다.  옆에 있던 경애의 언니, 수애는 ‘ 결혼할 때, 눈이 오면 잘 산다드라’  며 걱정이 서린 눈빛과는 다른 말을 했다.  잘 살게 되든 아니든 경애는 상관 없다는 듯이, 대꾸도 않고 발걸음을 옮겨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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